​“CEO는 전문경영인이 맡아야” 이재용 부회장 소신은 진행형

2017-08-15 17:17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나는 주주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다. 삼성은 지금까지도 계속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0년, 당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이재용씨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앞으로 맡아야 할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던 당시 이미 그는 경영자로서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할지를 정해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오는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전직 삼성그룹 임원들에 대해 1심 선고를 내린다. 핵심 쟁점은 삼성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엮이게 된 주된 이유가 과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냐는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일관되게 이 부회장이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문경영인들을 앞세웠다고 몰아세우고 있고, 이 부회장과 변호인 측은 이와는 무관한 강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과 이 부회장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이 전문경영인을 이용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전직 삼성 임원은 “겉으로 드러난 것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서도 이 부회장은 오너라는 점을 부각시키지 않았고, 삼성의 수많은 그룹 임원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만 일했다. 적어도 회장(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회장의 와병으로 어쩔 수 없이 삼성의 책임자라는 짐을 직접 지게 되었지만, 직책이라는 완장보다는 행동으로 그 짐을 실천해왔다”면서 “(회장이라는 직함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재판 과정에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회장 승진을 독촉했으나 그는 부친이 살아 계시고, “내 위치에서 한 단계 위치 변화가 있다면 회사 안이든 사회에서든 환영을 받으면서 하는 것이 좋지 않나”라며 고사한 사례도 드러났다.

또 다른 삼성 계열사 출신 임원도 “창업 회장, 선대 회장을 눈앞에서 지켜본 이 부회장은 삼성이 이뤄낸 전문경영인 체제를 자랑스러워했고, 이를 발전시키고자 했다”면서 “능력 있는 인사가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고, 그룹 차원의 결정이 필요한 중대사안을 결정할 때에도 전문경영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의견을 제안했다.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아도 전문경영인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동의하고 지지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자신의 재판에서 이 부회장은 “회사의 리더가 되려면 사업을 이해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줘서 좋은 사람이 오게 하고 경쟁에서 이기게끔 해야 한다. 직원들을 훈련하고,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경영권이지 지분을 몇 퍼센트 더 가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의 소신은 부친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은 “21세기형 경영자는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 내에 전파할 수 있는 철학자의 경륜이 요구된다”면서 이를 위해 △지혜 △혁신 △정보력 △국제감각 등 네 가지 조건을 꼭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또한 “파이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름이 똑같아야 성능을 제대로 발휘한다. 경영도 이와 마찬가지다. 파이프에 막힌 곳을 찾아 뚫어주는 것이 유능한 경영자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은 해낼 수 없는, 막힌 파이프를 뚫어주는 역할을 자처해왔다.

삼성 관계자는 “특검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전문경영인을 희생양으로 몰아세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 부회장은 전문경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특검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