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12.3 사태와 집단 사고

2024-12-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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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논설고문
[이재호 논설고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결서가 헌법재판소(헌재)로 넘어갔다. 헌재는 최장 180일간 심리를 거쳐 탄핵(파면)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일 경우 60일 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헌재가 심리기간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내년 4, 5, 6월에서 8월 사이에 선거가 치러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윤 대통령은 세 번째 대국민 담화(12월 12일)에서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시간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보수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했고, 취임 이후 한·미 관계 정상화와 한·일 관계 회복의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언론과 야권의 평가는 늘 인색했다. 국정의 목표로 삼은 4대 개혁(연금·노동·교육·의료)조차도 의지만 강조했지 어떤 방법으로 추진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국민과 직접 소통하거나 대언론 관계에 능한 것도 아니었다. 영부인 문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괴롭혔다. 야당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윤 대통령, 어떻게든 참았어야
 
그렇더라도 윤 대통령은 참았어야 했다. 이보다 더한 모욕을 당해도 견뎌냈어야 했다. 그는 어떻든 한국 보수의 상징적 버팀목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참지 못하고 비상계엄을 발동함으로써 그는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결국 탄핵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흔히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다고들 한다. 새가 양 날개로 날 듯이 말이다. 윤 대통령의 돌발적·즉흥적 행동 하나가 그 균형을 깨곤 한다. '르상티망’은 약한 자들이 강한 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원한, 질투, 한(恨)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강변하면서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착각이다. 내란이 아니라고 하면서 내란을 사주하고 있는 꼴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내란죄가 되면 탄핵이고, 내란죄가 아니면 탄핵이 안 되는 게 아니다. 탄핵은 헌법 또는 법률에 중대한 위반이 있다는 걸 말한다. 군이나 경찰을 동원해서 총칼을 소지한 채 진입하거나 강제적 물리력을 행사하는 게 내란죄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른바 종북세력의 준동과 선거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그런데도 선관위를 상대로 의미 있는 조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어쩌면 크게 둘로 나뉘었을 것이다. 한쪽은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대통령의 인식이 냉전시대에 묶여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적실성을 가질까.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북 관계를 개선해 공존과 평화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안보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게 모름지기 애국적·합리적 보수의 자세일 것이다.

윤 대통령, 더 겸손해야
 
어떻든 윤 대통령은 조금 더 겸손했으면 한다. 대국민 세 번째 담화를 보면서 나는 많이 놀랐다. 대통령은 담화를 읽어 내려가면서 분노한 표정과 어투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걸 보면서 다수 국민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분노-아마 정의로운 분노-가 대통령의 애티튜드와 품성을 구성하고 있는 특징임은 알겠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뿜어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날 자리는 남북 관계 전반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대응 방안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더 낮은 자세로 이해와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전후 미국의 외교정책 중 가장 참담한 실패 중 하나가 1961년 4월 17일 피그만 침공사건(The Bay of Pigs)이다. 게릴라로 위장한 쿠바 난민들을 쿠바의 피그만에 침투시켜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던 이 사건은 미국 외교사에 재앙으로 남아 있다. “반군의 내응”이 있을 거라는 미 CIA의 말만 믿고 피그만에 상륙했던 1400명의 가련한 쿠바 난민들은 카스트로 군대에 의해 사살되거나 포로가 됐다. 케네디 정부의 외교적 손실은 막대했다.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한 것은 물론 쿠바와 소련이 가까워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쿠바는 소련의 핵무기를 끌어들임으로써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했다. 피그만 침투작전은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없었다. 카스트로 정권이 난민들에 의해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도 않았고, 누구든 그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그런 무모한 일은 벌인 것일까.
 
우리 정당들도 ‘그룹 싱크’에 빠질 텐가
 
피그만 사건은 집단사고(group think)의 폐해를 보여준 정책결정의 전형으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정책결정에 참여한 사람들 간에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치열한 논쟁을 통해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쉽게 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는 현상을 말한다. 이른바 ‘동화(同化)의 경향’인데, 결국 끼리끼리만 모여서 결정을 하면 잘못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피그만 사건 당시의 정책결정 구조가 그랬다. 케네디(대통령)를 비롯해 딘 러스크(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국방장관), 맥조지 번디(안보보좌관), 앨런 덜레스(CIA 국장) 등 피그만 결정에 참여한 7인이 모두 친구 사이였다. 성장 배경도 비슷했고, 출신 학교도 대부분 하버드였다. 서로 워낙 친했던 이들은 피그만 침공의 무모함을 짚어내지 못했다. 전략회의가 수차례 열렸지만 누구도 반대편에 서서 한 번쯤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가 당대의 지성인들이고 수재였기에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뒷날 케네디는 “내가 그토록 어리석었단 말인가”라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12‧3 계엄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행태를 보면 여전히 ‘집단 사고’, 그것도 아주 편협하고 왜곡된 ‘집단 사고’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보는 듯하다. 야당을 향해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고도 했다.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세력과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의 담화를 놓고 2021년 1월 미 대선 당시 의사당 난입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자 이에 동조하는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라며 의사당에 난입했다.

“군 장성·보직 쓸어담는 ‘김용현 충암파’
 
윤석열 정부의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도 ‘집단사고’가 미치는 함의는 크다. 군은 일반 기관이나 조직과는 다른 상명하복(上命下服)을 거의 절대시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그렇다. 지금껏 드러난 바로는 군에서도 계엄을 주도한 세력은 윤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충암파’ 군인들로 확인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고교 동문인 ‘충암고 라인’이 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계엄법 2조에 따라 계엄을 건의할 수 있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모두 충암고 출신이다. 국방부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다.
 
계엄 사태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그는 김용현 전 장관의 지휘를 받아 계엄령 선포 후 정치인 등 주요 인사를 체포하고 중앙선관위 서버를 확보하라는지시 등을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여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총선 이후부터 계엄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자신은) 이후 여러 차례 계엄 추진을 만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령 만류한 게 사실이더라도, 대통령이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고교 동문들과 함께 계엄을 밀어붙였고 당사자들이 이에 동조했다면 결과적으로 더 강화된 ‘집단 사고’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언론에 따르면 지난 8월 ‘충암파’와 이에 맞서는 ‘국방파’ 간에 알력이 있었다고 한다. ‘국방파’는 지난해 10월 취임한 신원식 국방장관이 국방부와 군의 주요 보직이 충암고 출신으로 채워지자 이에 맞서 키우려 했다는 세력을 말한다고 한다(한겨레 2024년 8월 15일 <군 장성‧보직 쓸어 담는 ‘김용현 충암파’···‘윤석열 친위체제 구축>). 이들 ‘충암파’와 ‘국방파’ 간 경쟁 또는 알력이 12‧3 계엄 사태와 어떤 연관은 없는지도 살펴볼 대목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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