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든 가운데 AI 붐에 편승하고 있는 대만증시와 정치적 혼란에 휩싸인 한국증시 간 시총 규모가 1조 달러(약 1425조원) 가까이 벌어졌다고 블룸버그가 7일 보도했다.
대만 대표 주가지수인 가권(자취앤)지수는 올 들어 30% 가까이 오르면서 2009년(79% 상승) 이후 15년 만에 최고 수익률 기록이 유력시되고 있다. 반면 한국 대표 주가지수인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10%가량 빠진 가운데 세계 주요 주가지수 중 최악의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만과 한국 간 시가총액 차이가 9500억 달러에 달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대만증시의 강점은 TSMC뿐만이 아니다. 대만 시가총액의 37%를 차지하는 TSMC를 포함해 증시의 상당 부분을 AI 관련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대만증시를 추종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대만 지수에서는 총 40개 이상의 AI 관련 기업들이 지수 비중의 73%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AI 관련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고 지수 내 비중 역시 33%로 대만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AI 관련 기업의 비중 차이는 증시 전체 실적 차이에서도 나타난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MSCI 대만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 평균 예상치는 올 들어 33%나 오르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MSCI 한국 지수의 EPS 예상치는 8월에 고점을 찍은 후 5% 감소한 상태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뉴버거베르만의 얀 타우 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엔비디아의 AI 서버 시장 등과 관련해 생각해보면 대만은 이 밸류체인에 크게 관여하고 있다"며 "반대로 한국은 이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환경에 별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실적이 그리 좋지 않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2기에서도 대만 상황이 더 나아
내달 미국 우선주의와 고관세를 내세운 트럼프 2기의 출범이 전 세계에 우려를 초래하고 있지만 반도체 등 AI 관련 수출품이 많은 대만은 한국에 비해 그래도 사정이 낫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JP모건은 "대만 수출품은 미국 기술 공급망의 주요 부품들이기 때문에 지난번에 많은 제품이 관세에서 면제된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TSMC는 글로벌 AI 무역의 중심으로 평가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도 상황은 같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국제 증시 환경 변화가 심한 가운데 자국 내 투자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 역시 대만증시에는 긍정적 요인이라는 평가로, 국내증시 이탈이 커지는 한국증시와는 대조적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비비안 파이 펀드매니저는 "대만 투자자들의 국내 투자 선호 및 여전히 흥미로운 AI 성장 테마는 증시 참여를 지속적으로 촉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 같은 증시 차이는 통화 가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달러 대비 대만달러 환율은 올 들어 5%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원화 환율은 10%가량 오른 상태이다. 환율이 상승한 것은 통화 가치가 그만큼 하락한 것을 의미한다. 달러 강세 여파에 아시아 통화 전체적으로 약세를 보였지만 경제 펀더멘털의 차이로 원화의 약세가 한층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은행 크레디아그리콜의 에디 청 전략가는 "대만과 한국 모두 관세 위험에 노출돼있지만 대만의 경제 펀더멘털이 더욱 탄탄하다"며 "이는 2025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