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경쟁 우위를 갖고 있는 방산, 조선, 원자력 분야에서 한·미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분야에선 한·미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맞춤형 전략을 짜야 한다."
26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와 공동으로 개최한 '격랑의 트럼프 2기와 한국의 생존 해법' 콘퍼런스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한국의 통상환경 변화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PIIE는 국제경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연구 역량을 보유한 싱크탱크다.
또 트럼프의 공약 가운데 '위협'과 '실행'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젠 소장은 "트럼프 공약 가운데 강경한 이민 정책은 취임 직후 바로 실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관세 정책의 핵심 타깃은 중국과 멕시코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는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를 구분해 한국이 대응 전략을 세밀하게 짜야 한다"고 했다.
또 "기본적으로 미국의 경제성장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 2.0 시대에는 한국이 대미 직접투자를 확대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미국 요새(Fortress America)' 안으로 들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한국이 미국과 중국 외에 시장 다각화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제프리 쇼트 PIIE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관세정책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 FTA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동차·반도체·방산·조선 등 양국 이해관계가 합치되는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산업협력 아이템을 제안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동남아국가연합(ASEAN) 및 유럽연합(EU)과 협력 강화 등을 통해 한국이 '규칙기반 통상질서(rule-based trading system)' 유지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정부의 보편관세 정책 실행 시 한국의 대미 수출이 최대 158억 달러(13.6%)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관세에 대한 대미 수출 반응도(탄력성)는 산업별로 차이를 보였는데 조선, 플라스틱, 원자력은 관세장벽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감소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우리가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어 미국의 공급망 대체가 어려운 방산, 조선, 원자력 등에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개별 산업별 맞춤형 공급망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산업별 영향이 다른 만큼 '위기 속 기회'를 보다 상세하게 포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및 기술 규제로 한국 반도체 기업에는 부정적 영향이 예상되지만 방산 산업에는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컬렌 헨드릭스 PIIE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정책은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라면서 "주한미군 등 방위비에 대한 비용 분담 압박은 위협 요인이지만 나토(NATO)와 중동 지역에서 무기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한국 방산 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연원호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경제안보실장은 미·중 전략경제의 심화로 전 세계가 신뢰와 가치 중심의 블록경제 시대로 재편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 실장은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추진하는 미국이나 위험제거(de-risking)를 추진하는 EU와 달리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면서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으로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업정책, 가치공유국과 파트너십 강화라는 두 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으로 정부와 기업이 전례 없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도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면서 "다만 미국이 처한 상황과 한국의 역량을 면밀히 살펴보면 방산, 조선 등처럼 한국의 영향력을 살릴 수 있는 기회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내각 구성이 끝나는 대로 정부도 한·미 협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