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측은 평가 기준 점수도 넘었고, 의결 절차도 문제없었다고 했지만 여론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문체부와 국회는 "더는 체육회에 공정성과 자정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은 체육회 본부는 물론 각 종목 단체와 전국 시도체육회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정부 지원 자금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향력과 조직력을 쌓아왔다. 이 회장에게선 기본·원칙·상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본인의 영향력을 키우는 동안 내부는 썩어들어갔다.
당초 해외 일정을 핑계로 국회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던 이 회장은 공정위 발표 다음 날 귀국해 3선 도전 여부에 대해 조만간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3선 도전) 결정을 유보했다. 경기 단체, 시도체육회 관계자들과 추가 논의한 후 정식으로 자리를 마련해 거취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연임 의지를 내포한 것으로 풀이되는 발언이었다.
이런 결과를 낳은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체육회 '정관'일 것이다. 체육회 정관상 체육회장 등 임원은 4년 임기를 마친 후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재임 후 체육회 산하 기관인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추가 연임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스포츠공정위의 '공정성'이다. 스포츠공정위는 체육회장과 임원의 연임을 심사하고 징계·포상을 심의하는 기구로, 이 회장 취임 1년 후인 2017년 출범했다. 하지만 '공정위'란 말이 무색하게도 이번 심의가 공정했다고 보긴 어렵다.
더구나 구성원 다수가 이 회장 측근이란 점이 공정성 저해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김병철 현 스포츠공정위원장은 과거 이 회장의 특별보좌역을 지낸 인물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 연임 승인 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다른 공정위원들도 이 회장 체제에서 선임된 인사들이다. 위원들이 상대적으로 이 회장에게 호의적일 수밖에 없단 얘기다.
'셀프 심의, 셀프 연임 승인', 이른바 '셀프 심사'라는 비아냥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공정위는 '공정성' 책임이 있음에도 3연임을 승인하는, 낯부끄러운 결과를 내놨다. '비정상의 정상화'로 가는 진통이라고 하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스포츠를 통한 국민의 건강과 행복, 사회 통합 실현, 건강한 스포츠 참여 문화를 선도한다는 비전 아래 104년 명맥을 유지해온 '대한체육회'. 한국 체육의 산실인 대한체육회의 훌륭한 비전은 '8년' 만에 처참히 무너져버렸다.
다행히 정연욱 의원(국민의힘)은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체육 단체장이 연임할 때 '3선' 이상부터는 체육회 산하 기구가 아닌 외부 기관(스포츠윤리센터)에서 심사를 받도록 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문체부는 스포츠혁신지원과(가칭)를 신설하고, 체육단체 임원 연임 심의를 별도 기구에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곪아버린 염증을 도려내고 대한체육회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이 회장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리더십은 특권이 아닌 책임”이라고 말했다. 리더가 가진 권력 또한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종국에는 그 권력을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