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도쿄중앙은행과 우리은행

2024-11-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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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이케이도 준의 소설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에서만 600만부 이상 판매된 일본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그렇다고 현재 임원급인 한일·상업은행 출신이 모두 은퇴한 뒤 '진정한 우리은행'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데에도 업계에서는 의문을 표한다.

    2002년 이후 입행한 우리은행 직원들은 출신 은행에서 자유롭지만 이미 직·간접적으로 이득 혹은 피해를 봤고, 이 과정에서 파벌주의를 용인하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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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사진TBS 홈페이지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사진=TBS 홈페이지]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이케이도 준의 소설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에서만 600만부 이상 판매된 일본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열도의 선풍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동명의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42.2%를 기록하며 일본에선 기념비적인 드라마 시리즈로 꼽힌다.

일본 버블경제 붕괴 당시 금융권의 씁쓸한 여운과 명확한 선악 구도라는 단순하면서도 공감 가는 서사가 일본인들의 향수와 재미를 자극했다.
이야기는 은행 조직의 부정부패와 비리에 맞서는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의 활약상을 다룬다. 1991년 산업중앙은행(일명 구[舊]S)으로 입행했지만 버블 붕괴 이후 부실채권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쿄제일은행(구T)과 합병하면서 현재는 세계 3위의 도쿄중앙은행에 소속돼 있다.

주요 에피소드 중 하나는 구S와 구T 간의 파벌 싸움. 10년 넘게 이어져온 알력 다툼은 실적 경쟁과 인사 문제뿐 아니라 사내 정치, 금융당국과의 갈등, 행장을 중심으로 한 계파 충돌로까지 번지게 된다. 당시 은행장을 포함한 핵심세력이던 구T의 권모술수 속에서도 한자와는 은행 동기들과 힘을 합쳐 '5억엔 대출사기사건'을 극적으로 해결한다.

'한자와 나오키' 작중 스토리는 시간과 장소, 이름만 바꿔서 우리은행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도 부실은행 정리에 따라 대형은행의 인수합병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대형은행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대등합병으로 우리은행이 탄생했다.

극중 도쿄중앙은행과 비슷하게 우리은행도 결합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은행장은 상업·한일은행 출신들이 교차로 맡고, 계열사 CEO는 한일·상업은행 출신을 동수로 두는 관행이 있다. 은행 출신이 연거푸 행장에 오르기라도 하면 내부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금융당국과 국회의원실을 향한 제보, '내 식구 감싸기' 문화에서 2017년 채용비리와 2024년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가 불거졌다. 사실상 우리금융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초대형 금융사고를 만들어낸 것이다.

외부 출신인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초부터 계파 간 갈등과 대립을 봉합하기 위해 기업문화 혁신을 위한 조직쇄신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절벽에 서 있다는 심정으로 문화를 바꾸겠다"고 강조했지만 그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는 금융권 관계자도 없다. 파벌 갈등은 이미 우리은행에 뿌리깊게 박혀 우리금융 전체를 지탱하는 기업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 임원급인 한일·상업은행 출신이 모두 은퇴한 뒤 '진정한 우리은행'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데에도 업계에서는 의문을 표한다. 2002년 이후 입행한 우리은행 직원들은 출신 은행에서 자유롭지만 이미 직·간접적으로 이득 혹은 피해를 봤고, 이 과정에서 파벌주의를 용인하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이젠 20년 넘게 켜켜이 쌓여온 관습에 가깝다.

그러나 임 회장의 취임 일성처럼 분열과 반목의 정서,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는 이제 반드시 멈춰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행장 선임 절차가 더 이상 '자리 나눠먹기' 경쟁으로 치달아선 안된다. 계파 문화 해체의 신호탄으로 계열사 CEO 동수 분배 관행도 깨져야 한다. 임 회장은 우리은행을 변화시키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내놔야 한다.

지금은 말뿐인 대책이 아닌 실천을 보여줄 때다. 조직쇄신의 시기가 여기서 더 늦어지면 우리은행은 단순히 금융사의 신뢰를 훼손하는 문제를 넘어 음지의 문화가 고착화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이제는 닳고 닳은 이 문제를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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