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강조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현실화하면 한국 수출 실적이 크게 꺾이면서 저성장의 함정에 갇힐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 같은 불안감에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14일 4만원대까지 주저앉으면서 ‘사(死)만전자’라는 굴욕 타이틀을 얻었다. 뒤늦게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이라는 처방을 내놓았지만 이것이 본질적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명실상부 1위 기업이 속절없이 휘청이는 이 상황은 트럼프 포비아에 따른 여파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보면 삼성전자의 경쟁력 약화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큰 문제다.
시발점은 매출 중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뒤처지면서다. 고대역메모리반도체(HBM) 시장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린 데다 잘나가던 D램과 낸드에만 안주하는 ‘역량의 덫’에 빠진 탓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낮은 수율이 발목을 잡고 있고, 세계 최대 파운드리 제조사인 대만 TSMC와 격차도 더 확대되고 있다.
또 시장 내 신뢰도 하락은 결국 회사에 대한 믿음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믿음은 ‘결국엔 잘될 것’이라는 미래 비전인데, 삼성이 제시하는 뚜렷한 대안은 여전히 안갯속이어서다. 주주들이 회사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만 있을 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의 미래 방향을 가늠할 잣대로 연말 인사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미래전략실 해체 후 삼성전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사업지원TF의 혁신과 근간인 반도체(DS) 부문에서 리더십을 채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여부도 관심사다. 이찬희 준감위 위원장은 지난 10월 “사법리스크가 있다고 하지만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책임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간 이 위원장은 책임경영 차원에서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가 필요하다는 소신을 강조해 왔다.
삼성이 혹독한 위기를 보내는 이 시기, 침묵은 혹독한 겨울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지난 5월 이재용 회장은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며 만난 취재진을 향해 “봄이 왔네요”라고 짧은 인사를 건넸던 일이 떠오른다. 충분히 바닥을 다진 만큼 이제는 기업의 수장이 나서서 침묵을 깨고 봄을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