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항공사들이 중국 노선 운항을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 러시아 영공 폐쇄로 인한 항로 조정으로 중국 노선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 영공을 통과할 수 있는 중국 항공사들은 오히려 취항을 확대하면서 가격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의 '과잉 공급' 문제가 항공 업계까지 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중국 경제 매체 제일재경에 따르면 스칸디나비아 항공(SAS)은 전날 성명을 내고 11월 8일부터 코펜하겐-상하이 노선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 노선은 스칸디나비아 항공이 중국 본토에 취항한 유일한 노선으로 주4회 운항돼왔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은 “중국 시장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라면서 “노선을 재개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유럽 항공사가 중국 노선 취항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최근 들어 벌써 네번째다. 앞서 유럽 최대 항공사 독일 루프트한자는 10월부터 프랑크푸르트-베이징 노선을 임시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 8월에는 영국 항공사 버진아틀란틱이 오는 26일부터 런던-상하이 노선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유럽 항공사들의 잇따른 ‘중국 노선 포기’는 러시아 영공 폐쇄로 인한 비용 증가로 중국 노선 수익성이 악화해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연합(EU)은 러시아 항공사의 EU 영공 진입을 금지했고, 러시아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 항공사를 대상으로 자국 영공을 폐쇄하면서 유럽-중국 노선은 비행시간뿐만 아니라 비용도 상승하게 됐다. 버진아틀란틱에 따르면 러시아 영공 우회로 유럽 항공사들의 런던-상하이 왕복 노선은 비행 시간이 1~2시간가량 늘어났다. 이에 따라 연료도 더 많이 들어가고, 투입되는 인력 수도 늘어나면서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더구나 중국과 관계가 돈독한 러시아가 중국 항공사들에 대해서는 자국 영공을 별도로 폐쇄하지 않으면서 가격 경쟁에서 중국 항공사들이 훨씬 유리해졌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은 상하이 노선 중단 이유에 대해 중국 지사에 “러시아 영공 폐쇄로 항로 변경이 불가피해지면서 비행 시간이 길어졌고 비용이 상승했다”면서 “뿐만 아니라 중국 국내 항공사들과의 치열한 경쟁에도 직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 항공정보 제공 플랫폼 항반관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유럽 국제선 시장에서 중국 국내 항공사의 점유율은 72.2%에 달했던 반면 외국 항공사는 27.8%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항공사와 외국 항공사의 중국-유럽 노선 점유율은 각각 52.7%, 47.3%로 비등한 수준이었다.
중국 항공사들의 과잉 공급 문제도 제기된다. 중국민용항공총국(CAA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항공기 탑승객은 6억2000만명으로 2019년(6억6000만명) 수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투입된 여객기는 4013대로 2019년 대비 10%(368대)나 늘었다. 중국 동방항공은 지난 7월 기준 상하이-비엔나·런던·마드리드 노선을, 남방항공은 광저우-부다페스트 노선을 새로 취항했다. 여름휴가 시즌을 기점으로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노선과 덴마크, 헝가리, 그리스 등 유럽 항공편도 늘렸다.
중국 국내 항공사들이 국제선 취항 재개를 서두르는 것은 결국 자국 시장에서의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해서다. 제일재경은 "국제선이 재개되지 않으면 장거리 노선에 투입할 계획이었던 대형 여객기가 국내선에 투입된다"면서 "이는 소모성 경쟁을 일으키며 국내선 항공권 가격과 수익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중국의 과잉 공급으로 항공 업계는 벌써 타격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2분기 루프트한자의 아시아 노선 승객당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했고, 전체 순이익은 47%나 줄었다. 카르스텐 슈포어 루프트한자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항공사의 과잉 공급으로 "아시아 시장에 비정상적인 상황이 초래됐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