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perfect) 라는 말은 ‘완벽하다’라는 말이다. 완벽(完璧)이란 흠이 없는 온전한 구슬을 말한다. 사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은 이 옥구슬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즉 완벽을 만들기 위해 돌을 자르고, 깨고, 쪼고 가는 것이다. 완벽이라는 이 원형 구형체는 완전함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학문이나 인격에도 완성이나 완벽의 의미로 원숙이나 원만이란 말을 사용한다. 결국 우리의 매일매일의 일과 삶은 이 완벽(완전한 구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오늘 하루의 일과가 어떠했는가를 뒤돌아보며 일상의 완벽함 혹은 원만함과 원숙함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생각했고 일에는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성찰해 본다.
나의 하루는 5:30에 시작한다. 알람소리가 없어도 이 시간에 일어나긴 하지만 알람을 해 놓는 것이 편하다. 간단히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데 고민할 것이 없지만 될 수 있으면 멋지게 입으려고 노력한다. 건설노동자라도 폼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늘 한다. 복장은 안전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후즐근한 냉장고 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안전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업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인력센터가 있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린다. 저기에 모인 사람들이 다 일자리를 찾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미안한 마음으로 인력센터 앞을 지나간다. 이들을 보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영주역 역사를 최근 새로 지어 며칠 전 축하행사가 있었다. 이 역사의 8개의 기둥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처럼 배흘림기둥 양식으로 만들어 독특해 보인다. 솔직이 그리스의 도리아 양식이니 코린트 양식이니 하는 기둥과 비교하면 너무 밋밋하다고 생각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양식을 따른 것이니 역사적 의미가 깊은 기둥이다. 기차 굴다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서예교실을 지난다. 간판은 크고 창문에는 붓글씨로 잘 쓴 한시 한 장이 붙어있는데 한 쪽 테이프가 떨어져 비스듬히 걸려있다. 아마 주인장도 지금은 건설현장에 나가나 보다. 홀 안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듯한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다. 길가에는 많은 가게들이 이렇게 비어 있거나 창고로 쓰는 곳이 많다. 왼쪽으로 돌아가기 전에 ‘발근해마실’이라고 크게 써 놓은 빌라가 있다. ‘밝은 해마실’ 이겠지만 ‘밝은’을 소리나는대로 ‘발근’이라고 쓴 것이 무슨 의도인지 건물주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좀 더 가다 보면 언덕 밑에 500년된 영주시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도 오래 묵으면 영묘한 기운이 도는지 근처에 가면 뭔가 신비감이 느껴지는 그런 나무다. 이 보호수 건너편에 남간서당이 있는데 집 앞에 커다란 중수비가 세워져 있다. 서당 자체는 규모가 작지만 건물에 비해 중수비는 제법 크고 비에 새긴 글자도 많이 적혀 있는데 글자의 대부분은 서당을 중수하는데 참여한 사람들 이름이 대부분이다.
건설 현장은 이 서당 뒤편에 있다. 야트막한 산이라고 해야 할까 비탈을 깎아 여기에 건물 6개동을 짓고 있다. 아직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지만 여기서 내려다보면 영주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현장엔 출입구 안쪽에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만든 출퇴근용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어 모든 근로자는 우선 여기부터 체크한다. 여기에 체크를 해야 현장에서 일한 날 만큼 하루 6200원의 퇴직공제금을 받을 수 있다. 이어서 골조회사의 출퇴근용 안면인식기에 얼굴을 디밀어 출근확인을 한다. 오전엔 아침 7시 이전에 오후엔 4:40 이후에 찍어야 하루 공수가 인정된다.
아침식사는 현장식당(함바)에서 먹는다. 되도록이면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적게 뜬다. 함바식당의 음식맛은 전국이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전라도 쪽 현장의 음식 맛이 좀 낫다. 물론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면 음식은 다 맛있다. 식사 후 물통에 물을 채운다. 여기에 믹스커피를 두 봉지 넣으면 마시기 편하다.
6:50이면 아침 티비엠(조회)을 실시한다. 국민체조와 더불어 전날 현장 상황과 오늘 작업 안전에 대한 주의사항을 전파하는 시간이다. 원래는 공종별 현장소장들이 나와 오늘 작업내용과 주의사항등을 이야기하지만 작업자들은 매일 듣는 내용이 같아 따분하게 여긴다. 오늘도 “안전주의, 좋아!”를 세번 외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7:00 작업 시작. 나의 작업은 보통은 매일 건물 최상층의 갱폼에 올라가 건물 외벽을 땜방하는 것이다. 외벽 땜방을 위해선 일반미장용 몰탈이 아니라 견출용 몰탈을 사용한다. 타설 후 거푸집(알루미늄폼)을 떼어 낸 후 가장 먼저 손을 보는 사람이 바로 할석 미장공이다. 대부분 면이 깨끗하게 나오지만 건물이 올라갈수록 면이 거칠어지고 어떤 때는 곰보현상이 많아져 발라주어야 할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음부분 모서리는 파이기도 하고 살짝 층이 지기 때문에 매끄럽게 이어주어야 한다.
땜방을 하다보면 목수나 철근공들의 작업태도나 성격이 보이기도 한다. 벽면에 담배꽁초나 철사등이 삐져 나와있는 경우가 있고, 심한 경우에는 음료수 병이나 장갑 같은 것이 면에 묻혀 있는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이물질을 다 파내고 다시 발라줘야 한다. 더 심한 경우는 알루미늄 폼을 고정시키는 핀이 누락되어 면이 불룩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 때는 드릴로 벽면을 까내고 다시 발라줘야 한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일상의 생활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당히 음식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일하기도 수월하지만 과음을 하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일하는데 의욕이나 집중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안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이런 하루가 모여 일년이 되고 일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하는 과정이 목표나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과나 목표 달성을 위해 과정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거나 일하는 과정이 자신을 수양하는 도라 여기며 수행하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래 직업이란 말 Vocation은 칼뱅의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개념으로, 신에게서 특별한 사명을 부여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직업의식은 단순히 대가를 바라며 시간당 노동력을 제공하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천직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도들을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스위스를 중심한 서유럽의 제조업을 이끌었으며 이러한 전통이 유럽의 산엽혁명으로 이어졌다. 프랑스는 이 위그노들을 추방하여 한 때 산업이 형편없이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부론>과 <도덕철학>을 쓴 스코틀랜드의 아담 스미스는 칼벵과 함께 활동했던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의 영향을 받았다.
서양의 아담 스미스와 비교되는 현대 일본의 노동관을 확립시킨 사람은 에도시대 포목점 점원출신의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을 거론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주장하는 석문심학(石門心學)의 개념은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 다시 말해서 '모든 노동(일) 자체가 곧 정신수양이며 자기의 완성이므로 일하는 자체가 곧 도를 닦는 것과 같다. 돈보다 귀중한 것은 자신의 인격 완성이니, 일생동안 열심히, 이익이 없더라도 대가를 바라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다. 즉, 노동이라는 것은 생산활동이기 이전에 인격의 수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우선 근면하지 않으면 훌륭한 인격을 연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이나모리 회장이나 손 마사요시 회장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일본 고시엔 고교야구에서 한국계고등학교인 쿄토국제고가 전체 학생 160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고교야구를 제패했다. 한국에선 한국계 고등학교가 고시엔에서 우승했다고해서 대서특필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슴 뭉클해 했는지 모르지만 실제 이 학교 힉생들 중 한국계는 별로 없다. 고교생들이 야구에 미쳐 청춘을 불태운 한편의 드라마였다. 젊은 날 이렇게 동료들과 뜨겁게 여름을 보낸 친구들은 평생 이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선수뿐만 아니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공동체의식은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다. 목표나 결과중심의 대학입시로 삶의 질이 결정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점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거 같다.
오후 4:40,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다.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뛰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올 때 코스는 서천을 따라 둑방길을 뛰면 제법 거리가 멀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같이 합숙하는 동료들과 맥주 한 잔을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딱 한 잔으로 그칠 수 있는 용기다.
오늘 일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상기해 보며 그림을 한 장 그린다. 이것은 나의 그림일기며 노동일지다. 오늘 현장에 물통을 안 가져가 한참 일하다가 목마를 때 내게 물 한모금을 권해주던 그 노동자를 떠올려 본다. 그의 넉넉한 웃음이 기억에 남는다.
잠들기 전 이시다 바이간의 <도비문답>(都鄙問答)을 몇 페이지를 읽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일개 포목점 점원도 성리학을 이해하고 국민적 계몽서인 상도에 관한 책을 썼는데, 가방 끈이 제법 긴 건설노동자인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