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가 미·중 갈등 속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중국의 해군 굴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한국 조선사들과 협력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해군은 한국의 조선업체들이 보유한 생산 능력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 조선업에서 생산 능력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상업용 조선 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46.59%, 한국이 29.24%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는 한국이 중국보다 우수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미국의 상황은 국내 조선업계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미국 해군 고위 관계자들이 HD현대와 한화오션의 R&D센터를 방문하여 미래 함정 및 친환경·디지털 선박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HD현대는 AI 기반 함정 솔루션, 하이브리드 전기 추진 선박, 디지털 트윈 가상 시운전 등 다양한 기술 개발 역량을 소개하며, 해외 함정에 대한 유지·보수·정비(MRO) 전략을 제안했다. 주원호 HD현대 특수선사업대표는 "세계 1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의 협력이 확대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해군 함정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인 토마스 앤더슨 소장은 "미국과 한국이 조선 분야에서 상호 협력할 기회에 대해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뜻깊다"고 밝혔다.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들도 같은 날 한화오션의 시흥 R&D 캠퍼스를 방문해 친환경 연료 육상 시험 시설(LBTS), 공동 수조, 예인 수조 등을 둘러보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한 잠수함용 리튬이온 에너지저장장치(ESS)도 큰 관심을 받았다.
앤더슨 소장은 "한화오션의 역량과 투자가 매우 인상적이며, 향후 한미 간 조선 R&D 분야에 상호 이익을 위한 기회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김희철 한화오션 사장은 "이번 방문이 미국 해군의 MRO 사업과 향후 함정 건조에 필요한 기술적 교류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국내 조선업체들이 미국에서의 새로운 사업 기회 중 가장 가시적인 분야로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꼽고 있다. HD현대는 조만간 미 함정 MRO 수주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HD현대중공업은 MSRA 체결을 통해 MRO 사업 입찰 자격을 확보한 상태이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특수선 야드 가동 상황과 수익성을 고려해 조만간 저희도 참여할 생각"이라며 MRO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화오션은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인 미국을 집중 공략해 왔다.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지난 6월 1억 달러(약 1380억원)에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며, 국내 기업의 미국 조선업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은 한화 조선소 인수에 대해 "새로운 해양 치국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미국 조선업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