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없는 ESG①]전 세계 흐름 '탄소 감축'인데…'제2 폭스바겐 되나' 전전긍긍

2024-09-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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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탄소 감축 노력

2050 탄소중립 선언 영향

EU 선두에 나서다 주춤

"딜레마에 빠졌다" 호소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 태양광 모듈 3600장이 설치 돼 있다사진삼성전자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 태양광 모듈 3600장이 설치돼 있다.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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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데일리] 기후위기부터 출산·양육, 준법 감시까지···. 정치권의 선거 구호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담긴 내용들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중요해진 시대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를 분석, 실천 여부를 점검해봤다. 편집자주


친환경 선도 기업으로 꼽히는 독일 폭스바겐의 위기는 국내 기업에게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친환경 경영에 속도를 내며 추진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걱정에서 나아가 폭스바겐 운명을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내놓고 있다.

이코노믹데일리가 19일 국내 10대 그룹이 올해 내놓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부분 기업은 친환경 설비를 도입하거나 관련 기술에 투자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힘을 쏟고 있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DX(가전) 부문은 지난해 재사용 원료 비중이 25% 이상인 플라스틱만 구매했고, DS(반도체) 부문은 '공정가스 처리설비(RCS)'를 사업장에 확대 적용했다. RCS는 공장에서 나오는 가스에 촉매를 넣어 오염 물질을 줄이는 설비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배터리 연구·개발비에 3084억원을 사용했다. 주요 사업을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정유업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친환경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또 정제 설비에 저탄소 재생원료를 사용하거나, 폐열을 재사용하는 '열 효율화' 설비를 도입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친환경 행보에 나선 이유는 전 세계 선진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탄소중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지역은 유럽이다. 특히 독일은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을 퇴출하고 2045년 탄소중립을 완료하는 등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친환경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자료에너지경제연구원 세계법제정보센터
[자료=에너지경제연구원, 세계법제정보센터]

독일 대표 기업인 폭스바겐도 이에 맞춰 경영 전략을 세우고 친환경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2021년 풍력·태양광 발전소에 140억 유로(당시 약 18조7983억원)를 쓴다고 밝혔고 지난해엔 2026~2028년 내연기관 차량 개발을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계획도 알렸다.

폭스바겐의 위기는 이 과정에서 나왔다. 전기차 시장이 미국 테슬라를 비롯해 한국과 중국 기업에 넘겨준 상황에서, 2016년부터 이어온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 자리마저 2020년 하이브리드차를 앞세운 일본 도요타에 내줬다. 결국 폭스바겐은 지난 2일(현지시간) 85년 만에 독일 내 공장 2곳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발표한 'EU 경쟁력: 미래를 내다본다'란 제목의 보고서는 독일의 친환경 정책 실패를 지적하며 폭스바겐 위기의 이유를 우회적으로 설명한다.

보고서는 독일의 내연기관 차량 퇴출 선언에 대해 "산업 정책 없이 기후 정책을 적용하려 했던 EU의 계획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놀라운 건 이 같은 보고서가 나오기 전부터 유럽에선 환경 정책으로 인한 산업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이다. 각 나라는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탄소중립 정책의 속도 조절에 나서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유럽연합(EU) 의회는 재생에너지 지침 개정안(RED-III)을 처리할 때 프랑스 등 친(親) 원자력 발전소 6개국 반대로 표결이 연기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원전이 탈탄소 대안책에서 빠져 자국의 원전 산업 경쟁력과 전력 수급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고민에 빠졌다. 유럽의 탄소중립 정책에 맞춰 진행한 사업 전략을 전면 수정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일례로 국내 정유업계는 EU 규제에 맞춰 지속가능항공유(SAF) 전용 설비를 구축하는데 약 6조원을 투입할 예정인데, 규제 강도가 낮아지면 투자금은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 최근엔 탄소중립 정책에 집중하다 폭스바겐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고민까지 더해졌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기후 변화 대응에 동참하며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노력하고 있지만, 유럽의 규제가 불확실해져 방향성이 모호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흐름 자체가 바뀌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최근 나온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당장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큰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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