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자 프로골퍼인 스테이시 루이스는 "여자 프로골퍼는 남자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다.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이러한 판도가 지난주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2)에서는 잠시나마 바뀌었다.
남자보다 여자 프로골프가 이목을 끌었다.
올드코스는 '골프의 본고장'이라 불린다.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코스다. 올해로 472년이 됐다.
이곳에서 여자골프 5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AIG 위민스 오픈이 48번째 대회를 개최했다. 2007년, 2013년에 이어 11년 만이다.
2013년 우승자인 루이스는 대회를 앞두고 "올드코스에 여자 우승자가 있다는 사실은 멋지다. 세 번째 선수의 등장이 기대된다"고 행복해했다.
대회 중반부터는 올해 36세인 신지애가 주목받았다. 비바람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세 번째 우승에 도전했다.
신지애는 지난해 5월 할머니를 여의고 미국·영국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메이저 성적은 준우승과 3위. 올해는 우승을 노렸다.
신지애가 선두로 최종일을 출발할 때 다른 선수는 한 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동갑내기인 김인경이다.
선수 생활 18년 차인 김인경은 남몰래 역사적인 장소에서의 은퇴를 준비했다. 준비는 소박했다. 조언자(마틴 슬럼버스 R&A CEO)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거였다. 전달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그러고는 호텔로 돌아갔다.
이 사실이 R&A를 통해 대회장에 퍼졌다. 전 세계 기자들이 당황했다. 소속된 LPGA 투어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다. R&A는 김인경을 코스로 불러들였다.
은퇴를 앞두고 만난 김인경에게는 더 이상 불행(30㎝ 파 퍼트 실수)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지 않았다.
김인경은 "행복하고 감사한 사람이라 은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며 울었고, "골프를 통한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며 웃었다.
김인경이 프로 무대에서 내려오자, 우승 경쟁이 가속화됐다. 신지애는 잘 풀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미소를 보였다. 미국 선수들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들 앞에 먼저 출발한 한 선수가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다.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한국명 고보경)다. 18번 홀 버디로 7언더파에 올랐다.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캐디와 함께 퍼팅 연습을 하고, 가족·지인 등과 대화를 나눴다. 미국 선수의 퍼트가 홀을 외면하는 순간. 리디아 고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8년 4개월 만의 메이저 우승.
리디아 고는 대회 전 "금메달 같은 동화가 다시 시작된다면 나는 보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고, 우승 이후에는 "동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3년에는 16세였다. 이제는 얼마나 역사적이고, 특별한 곳에서 우승한지를 안다"고 했다.
우승을 놓친 신지애는 라운드 직후 리디아 고와 포옹했다. 그늘에 가려져 스코어카드를 접수하러 가는 도중에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