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친일·반중 분위기 확산…중심 잡고 이익 놓치지 말아야

2024-08-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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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국가 간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국민 간의 정서도 멀어진다. 국가와 국민이 따로 놀지 않고 정확하게 같은 선상에서 움직인다. 이에 하나 더 덧붙이면 상호 경제적 이해가 일치할 때는 교류가 활발하다가도 상황이 반전되면 졸지에 좋던 분위기가 식고 만다. 중국과 일본과 같이 지척에 있는 이웃과도 이러한 관계가 예외 없이 적용된다. 특히 나이가 든 중장년층보다 청년층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이 2030 세대를 대상으로 시행한 일본과 중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 결과를 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일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57.3%(35.1% 부정)로 절반을 넘었지만, 중국에 대한 긍정적 반응은 10.1%(86.2% 부정)로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20대만을 놓고 보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불과 5년 전과 비교해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라서 놀랍다. 국민적 감정이 마치 제로섬 게임을 보듯 한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수시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나 일본 국민도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여 3국 국민의 정서가 시대 상황에 따라 매우 예민하게 움직인다. 한번 거리가 멀어지면 결정적인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평균 10년 정도의 기간에 걸쳐 지속되곤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정권의 색깔에 따라 이웃과의 친소 관계가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위험한 징조가 돌출한다. 그리고 한번 바뀌면 복원력이 매우 더디다. 민간의 경제 활동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쳐 경제적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이 늘어난다. 국가 간의 관계 기복이 크면 여론이 수시로 출렁하고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문제의 본질을 보다 근원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우리 쪽에서 촉발했다기보다는 중국 측의 전략적인 판단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92년 수교 이후 20여 년간 지속된 양국 간의 밀월은 상호 필요성에 의해서 견고하게 유지됐다. 그러나 이 필요에 균열이 생기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냉정한 이치를 우리가 간과했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변화에 따른 당혹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에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미국 편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지도 양국 관계 악화를 부채질했다.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과 시장의 확대가 중국 내에서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우리 기업에 계속 유리할 것이라는 우리 기업의 엄청난 착각이 빚어낸 참사다.
 
중국 시장이 커질수록 중국 기업의 시장 참여가 늘어나게 되고,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생산이 계속 늘어나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과잉 생산에 직면하게 된다. 필연적으로 시장 내에서 구조조정이 따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외국 기업의 손해가 불가피하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이 한국 기업이 되는 것은 정해진 시간표다. 중국 기업의 기술력이나 상품 제조 능력이 이미 한국 기업과 대등하거나 일부는 이미 추월하고 있어 한국의 필요성이 빠르게 약화하였다. 동시에 터져 나온 사드 보복(한한령)이나 역사 왜곡, 일부 중국 미디어의 노골적 한국 무시, 코로나19와 대기오염 등이 겹치면서 시간이 갈수록 양국 국민 간의 증오와 분노 지수가 오르면서 혐한 혹은 혐중 정서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는 중이다.

새롭지만 경험했던 환경, 현상 활용하는 전략이 있으면 국익 챙길 수 있어
 
대조적으로 일본과는 관계는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일본에 대한 열정이 더 뜨겁다. 과거와 같은 활발한 재계의 교류까지는 아니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언제 냉각기가 있었나 할 정도로 벽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인의 일본 여행은 확대일로이고, 일본 여행객의 한국 방문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문화 국경은 완전히 사라져 K팝과 J팝이 양국에서 같이 열풍이다. 여행자들은 서로 양국의 성지(명소)를 순례하는 특이한 증후군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이에 찬물이라도 끼얹으려는 듯 국내 정치권에서는 과거의 굴레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일관한다. 신세대는 미래로 가자고 하는데 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 그들은 여전히 40여 년 전의 낡은 사고에 갇혀 있다.
 
일본과의 교류 재개는 경제계로도 서서히 옮겨붙고 있다. 한동안 물밑에서 진행되던 기업 교류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일본 기업은 한국과의 첨단 분야 기술 협력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한국 스타트업은 국내보다 오히려 일본 시장에 관심이 없다. 일본 기업에 취업에 일하는 청년들이 많아진다. 일본 맥주나 사케를 찾는 사람들이 다시 증가하고, 유니클로의 매출은 신장세다. 일본에서도 한국 화장품이나 식품 등 소비재에 관한 관심이 증가세다. 억눌려 있던 비즈니스 협력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하지만 아직 양국 간 무역 통계를 보면 변화가 미미하다. 한때 2~3위인 수출대상국 일본은 여전히 5위다. 렉서스 등 일본 자동차는 한국 내수 시장에서 잘 나가지만 한국산 자동차나 가전 등 내수 소비재는 일본 소비자가 외면한다. 자동차의 경우는 중국산보다 일본 시장 점유율이 낮다.
 
친일·반중 현상을 당분간 역전시킬 방도는 없어 보인다. 중국이 강해지면서 작아지는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지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다. 다만 이런 반복적 상태가 자칫 중심을 잃고 국익을 해치는 일이 발생할까 염려된다. 일본과는 적극적으로 협력하되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 감각을 잃어서는 되지 않는다. 정치적 갈등만 해소되면 일본과의 제휴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더 복잡하다. 냉정하게 보면 한·일 간의 협력 확대가 중국을 긴장시키면서 긍정적 변화도 가능케 한다. 우선 중국에 남아 있는 기업이 소멸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국내와 해외를 연결하면서 그들의 리밸런싱을 지원해야 한다. 소비재 시장은 중국 소비자를 자극할 수 있는 소스를 찾아내지 못하면 고전할 수밖에 없다. 새롭지만 경험했던 환경이고, 이익을 놓치지 않을 비결도 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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