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엔 캐리 청산 공포, 피벗의 역습

2024-08-2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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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2024년 8월 5일 자본시장 역사에 한 페이지가 기록되었다. 느닷없이 블랙먼데이(Black Monday)가 찾아왔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8.77% 내렸고, 장 중 한 때 무려 286p 하락했다. 코스피 하락 폭은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코스피 시장 역사상 여섯 번째 ⑴서킷브레이커(주식매매 일시정지)를 발동했고,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당시 2020년 3월 이후 4년 2개월 만이다. 붕괴 그 자체였다. 당일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하고, 다음날 매수 ⑵사이드카를 발동했다.
(⑴서킷브레이커: 전기 회로에서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s)가 과열된 회로를 차단하는 장치를 말하듯,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갑자기 급락하는 경우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주식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제도로 '주식거래 중단제도'라고도 한다.)

(⑵ 선물가격이 전일 종가 대비 5% 이상 변동(등락)한 시세가 1분간 지속될 경우 주식시장의 프로그램 매매 호가의 효력이 5분간 정지되는 제도이다.)
 
공포감이 집중되었던 월요일이었다. 물론, ‘미국 경기침체 오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도 있었고, 중동분쟁이 확전될 우려도 한몫했다. 그러나 다음날 주가가 급등해 매수 사이드카를 발동했을 만큼 이러한 불안은 ‘과잉 공포’였고, ‘과장된 경기침체’였다. 다만, ‘근거 있는’ 하나의 공포감, 엔 캐리 청산은 향후 언제로도 현실이 될 수 있는 요소다. 공포감이 현실로 전개될 수 있는지를 진단해 보는 것은 경제주체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 ‘1경 엔’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저금리 통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것을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라 하고, 엔화를 빌려 타국 자산에 투자할 경우 엔(Yen) 캐리 트레이드, 미 달러화를 빌려 타국 자산에 투자할 경우 달러(Dollar) 캐리 트레이드라 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는 용어가 와타나베 부인이다. 와타나베(Watanabe)는 한국에서 김씨·이씨처럼 흔한 성(姓)으로, 국제금융가에서 일본 외환투자자들을 부르는 용어다. 국경을 넘나드는 엔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를 통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일본인 일반투자자들을 의미한다. 명칭과 관계없이 남녀를 불문하는 용어이지만, 주로 일본 가정 내에서 전통적으로 가계의 저축 및 투자를 전담해 온 일본 가정주부들을 지칭한다. ‘일본 아줌마부대(Japanese Housewives)’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일본 ⑶개인의 외환증거금거래(F/X거래)는 2022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연간 거래 규모가 1경 엔을 웃돌았다. 2024년 상반기까지 월평균 거래 규모가 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2024년 상반기까지 세계적으로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동안, 일본은 ‘나홀로’ 마이너스 금리를 운용한 결과다.

(일본에서 개인의 외환시장 직접 참가(외환증거금거래)는 1998년 외환법 개정으로 가능해졌으며, 이전까지는 외화예금 등을 통해 외환에 투자했다. 소액의 거래증거금을 기초로 환율변동에 의해 생기는 차액만을 결제하여 손익을 확정하는 거래다.)

 
월 평균 FX 거래규모 자료 금융 선물거래협회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월 평균 F/X 거래규모, 자료: 금융 선물거래협회,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엔 캐리 청산 일어날까?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Yen Carry Trade Unwind) 절차가 일어날까? 엔 캐리 트레이드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로 인해 발생했다면,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축소되는 과정에서는 엔 캐리 청산이 일어나는 것은 정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에 일어났던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Unwinding)됨을 뜻하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장기적으로 0.5%~0.6%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금리정상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일본의 경제 여건이 자신감 있게 금리인상을 추진할 만큼 견실한 것은 아니다. 즉, 일본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하지만 그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의 추가 금리인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엔 캐리 청산 절차는 2025년 경제 시나리오에서 배제해도 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본이 기준금리 인상을 못할지라도 엔 캐리 청산은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추진되는 만큼,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 격차는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유로존, 캐나다, 영국 등의 국가들이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피벗‘이 이루어지는 시대인 만큼, 엔 캐리 청산은 이루어질 수 있다.

 
주요국 정책금리 전망 자료 IMF20244 World Economic Outlook
[주요국 정책금리 전망, 자료: IMF(2024.4) World Economic Outlook]

엔 캐리 청산의 경제적 충격
엔 캐리 청산이 일어날시, 자본시장의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돈이 미국 자본시장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가격의 조정이 일어나고,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켜 패닝 셀링(Panic Selling)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세계 자본시장이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세계 자본시장에 어두운 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엔 캐리 청산이 있었을 때마다 코스피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엔 캐리가 급진적으로 청산되느냐, 완만하게 청산되느냐에 따라 하락폭은 다를 수 있다. 급진적 청산이 이루어졌을 때는 –56.7% ~ –35.7%의 하락률을 기록했고, 완만한 청산이 이루어졌을 때는 –15.9% ~ –10.9%의 조정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코스피 조정이 엔 캐리 청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 등과 같은 대형 경제적 이벤트가 있었던 시점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앤 캐리 청산 시기별 코스피 하락폭 자료 교보증원
[앤 캐리 청산 시기별 코스피 하락폭, 자료: 교보증권]

모니터링을 강화하라
금융당국은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 증시가 불안할 때, 한국 증시가 유독 강하게 흔들리는 시스템적 요인을 찾아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 자본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 대부분이 손실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불안정성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 모니터링이다.
 
재정당국은 실물경제 충격으로의 전이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엔 캐리 청산이 일어나 자본시장의 조정이 있고 나면,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냉각될 수 있고, 자기자본이 감소한 기업들은 투자 의지가 수축될 염려가 있다. 자본시장 불안정성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일을 막도록 해야 한다.
 
가계와 기업도 엔 캐리 청산의 시그널을 모니터링 해야 한다. 엔 매도 포지션에서 매수 포지션으로 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예의주시 해야 한다.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점화하는지, 미국 등의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이 예고하지 않는 빅 컷(Big Cut)의 금리인하를 단행할 때 엔 캐리 청산이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 엔 캐리 청산의 시그널로서 엔-달러 환율도 중요하다.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할 경우 엔 캐리 청산이 일어날 수 있다. 모니터링을 강화함으로써, 자본시장의 조정 가능성을 사전에 진단하여 위험을 회피하거나, 자본시장 조정의 성격을 진단하고 대응한다면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다.
 
증권가에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되는 ’피벗의 시대‘. ’엔 캐리 청산‘이라는 피벗의 역습이 찾아올까 공포감이 형성되어 있다. 미국 연준으로서는 엔 캐리 청산이 두려워 금리인하를 지연시키는 것도 아닌 만큼, 피벗의 시대에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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