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8·15 '통일 독트린' 공허한 이유

2024-08-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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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제79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윤석열 정부가 ‘8·15 통일 독트린’을 내놓았다. 독트린은 한 나라가 대외적으로 공식 표방하는 원칙상의 정책이다. ‘통일 독트린’은 통일에 대한 정책의 대외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에 대한 대외 선언의 핵심은 무엇이어야 할까? 다름 아닌 통일의 방법이다. 다시 말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다. 통일의 대상이 북한이기 때문에 북한을 향해 어떻게 통일할 것인지를 천명해야 한다. 따라서 통일 독트린은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통일은 남한 혼자서 할 수 없다. 혹자는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 혼자서 통일을 이룰 수 있지 않은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가망이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혀 바람직하지도 않다. 감당해내기 어려운 심한 후유증을 가져올 것이 뻔하다. 더 나아가 통일의 과정은 평화적이어야만 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4조와 66조에 명시되어 있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명제다. 평화적 통일은 북한과 공존, 상호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내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금과 같은 적대적 남북 관계를 하루빨리 협력 관계로 바꿔야 한다. 통일 독트린에는 이런 무게감 있고, 비중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윤 정부의 통일 독트린에는 그런 기대를 하기 힘들다. 국내, 북한, 대외 분야로 나누어 제시된 ‘3대 통일 전략’에는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찾기 어렵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통일을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이루려 하고 있다. 정작 중요하고 직접적 대상이 되는 북한 정권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촉진'함으로써 통일하겠다고 한다. 통일을 위해 '자유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 부강하고 매력 넘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북한 주민들, 특히 청년들이 잘 알게 해 누구라도 통일을 동경'하게 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정말 그렇게만 하면 통일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생각의 이면에는 남한을 잘 아는 북한 주민들이 북한 정권에 대해 봉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은 그런 집단이 아니다. 불만 표출이 가능한 남한에서도 어려운데 엄한 감시와 통제 속의 북한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 주민의 대부분은 남한이 잘사는 나라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남한을 동경하는 청년들도 많다. 이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많은 북한 이탈 주민들이 우리의 라디오 방송, TV를 통해 북한 정권의 거짓 선전 선동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그들의 깨달음은 남한 사회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 아무리 그런 깨달음이 있다고 해도 그 깨달음을 주위에 전파해 하나의 정권 대항 세력으로 결집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둘째, 윤 정부는 북한 인권의 담론을 확장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을 통일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그것이 별다른 도움으로 작용할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북한 인권보고서를 발간하고, 국제인권회의를 개최하겠다고 하나 그 대상은 극히 제한적일 뿐이다. 또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 지식과 정보를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통일에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어렵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 어떤 상태인지는 남한 주민은 물론 전 세계 사람 중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윤 대통령은 '북한 자유 인권 펀드'를 조성해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촉진하는 민간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북한 주민과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 8월 1일 북한 수해 이재민에게 구호물자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절대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말과 행동은 다르다. 민간단체가 정작 자체적으로 북한 수해 지원을 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소극적이다. 수해 지원을 위한 민간단체의 ‘북한주민접촉신고’를 통일부가 승인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인도적 지원은 말 그대로 인도주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북한이 비록 우리의 지원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민간단체가 실제로 하겠다는 것에는 허가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셋째, 통일을 이루는 과정이 대단히 막연하다. 윤 대통령은 “우리 안의 자유를 굳건히 하는 동시에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의 허위 선동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국민 경제와 사회적 풍요가 보장될 때 독일 통일의 사례처럼 자연스럽게 통일로 귀결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풍요로우면 저절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독일 통일을 해당 사례로 들고 있으나 이는 부합하지 않는 이야기다. 독일 통일은 서독이 부유해서 이루어진 통일이 아니다.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 수십 년 동안 동서독 사이에 엄청난 규모의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이 한결같이 이루어졌다. 그것이 동독 주민의 의식을 바꾸고 통일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서독의 사회적 풍요가 가져온 통일이 아니라 단절을 극복하려는 끈질긴 노력과 강한 연결이 통일을 가능하게 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남북 당국 간 실무 차원의 '대화 협의체' 설치하겠다고 하나 이 제의의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북한과 대화하려면 먼저 대화를 위한 바람직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환경 조성의 의지를 강력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갈등과 대치의 남북 관계에서 밑도 끝도 없이 남북 대화를 통해 경제협력, 인적 왕래, 문화 교류, 재난과 기후변화는 물론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비핵화 등 무엇이든 다루고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하면 북한이 선뜻 응하겠는가? 북한은 먼저 남한 정부의 진정성부터 의심하지 않겠는가. 대화는 상대적이다. 남북한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기는 것과 같은 느닷없는 제의가 통할 것 같지 않다. 정부는 먼저 전단지로 야기된 오물 풍선 문제부터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8·15 통일 독트린’에는 통일의 청사진이 없다.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통일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에 대한 과정도 없다. 대북한 우월적 자세로 북한이 없어지는 통일만 상정하고 있다. 북한에 자유 이념을 전파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하며 대화하자고 하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남북한 사이의 진정한 교류·협력이 없는 통일 독트린은 공허한 선언일 뿐이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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