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를 사는 필자에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차를 몰고 북녘땅을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남북관계를 연구하며 마음속 깊이 품어온 간절한 소망이다. 북한이 ‘라오스’나 ‘캄보디아’처럼 아무 때라도 이웃 나라 방문하듯 갈 수 있는 지역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북녘땅을 그냥 지나치기라도 할 수 있다면 기쁘기 그지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 생전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동안 살아온 나날이 억울하기까지 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남북한 관계가 그렇게도 변화할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하고 늘 자문하게 된다. 무엇부터 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일까?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수십년 전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 치라도 개선될 수 있는 희망마저 차단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마저 치밀어 오른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그런 미래 구상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반도 평화경제구상”이라는 것을 들어봤는가? 이 모두는 통일보다 먼저 소위 “북방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유라시아를 하나의 대륙으로 가져가려고 했던 구상이다. 에너지, 전력, 통신, 교통, 산업 분야의 인프라를 구축, 거대한 유라시아 단일시장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국경을 넘는 복합교통망과 생산 네트워크, 더 나아가 협력도시권을 구축하려고 했다. 북한의 나진⸱선봉은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극동과 하나로 연계된다. 문재인 정부의 ‘신경제 구상’도 마찬가지였다. 남북한이 처음부터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경제공동체’를 먼저 건설하는 것이다. 생산과 물류를 통한 경제적 이익부터 공유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경제권에 간도와 연해주, 동중국해 연안까지를 포함하는 거대 물류권 형성이 목표였다. 환동해, 환황해, 접경지역의 3대 경제⸱평화 벨트 개발은 이를 이루는 핵심 바탕이다. 유라시아 복합물류망과 동북아 슈퍼 그리드(Super Grid)의 구축, 한⸱러 천연가스협력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었다. 한반도가 그야말로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 비즈니스와 첨단산업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이었다. 이 구상에 ‘이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군사적 힘은 비켜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오히려 군사와 안보, 이념에 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북한 핵 문제, 남북한 갈등이 한 치의 소통공간조차 마련해 내지 못했다. 가야만 할 ‘연결’의 길을 두고, ‘연결’을 가로막는 ‘이념’의 길을 먼저 가려고 했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구상이 되고 말았다. 쉽게 소통하고 합의할 수 있는 길을 외면한 채, 어렵고 불가능한 길을 애써 가려고 했기에 지난 수십년 동안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었다. 그렇게 허송한 세월이 안타깝기만 하다.
죽은 ‘한반도의 미래비전’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사라진 동북아 물류공동체의 길을 새롭게 찾아내야 한다. 믿음을 가지고 추구하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비전이다. 지금은 도달해 있지는 않지만, 눈앞에 보이는 생생하고 거대한 목표가 비전이다. 목표를 다시 세우자. 지금이라도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목표를 다시 만들어 세워야 한다. 사명감을 가지자. 사명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다. 더 늦기 전에 한반도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사명의 첫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북녘과 유라시아로 향한 육로를 열기 위해 우리의 신명을 바치자. 유라시아를 잇는 길을 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자.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철저히 비정치적인 대화만을 준비하자.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표에서 눈을 돌릴 때 장애물이 있을 뿐이다. 용기를 갖자. “용기를 내면 지금의 안정된 발판을 잠시 잃을지 모르나, 용기를 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고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필자는 머지않아 남북한 당국에 요구할 것이다. 북녘땅을 거쳐 유라시아의 길을 가겠으니 육로를 열어달라고 말이다.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간직해 온 소원, 얼마 남지 않은 생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이것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블라디보스토크’를 기점으로 하는 시베리아 횡단 길이라도 가려고 한다. 그 길에서 세계의 친구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남북한과 유라시아를 잇는 물류 길을 여는 데 동참해 줄 것을 간절하게 호소할 것이다. 생각을 같이하는 동지를 규합하고, 길을 잇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임을 확인하고,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함께 북방의 길을 가지고 할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한반도의 미래비전을 반드시 다시 찾자고. 그 비전을 실현하는 것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사명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자고 말이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전하면서 그 길을 갈 것이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