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현재 점증하는 안보 위기에 휩싸여 있다. 국내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과 북한의 ‘오물풍선’이 전형적인 치킨게임 모습을 띠면서 국민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남한이 대응 수단으로 이동식 확성기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과거 북한이 행한 조준 사격의 위험을 완전히 회피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위험한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한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긴장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남한의 대북 전단 살포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가? 북한이 비록 저질스러운 오물풍선으로 대응했으나 남북한은 서로 상대가 행한 행위에 따라 정확하게 비례적으로 주고받는 팃포텟(Tit for Tat) 게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남북한이 모두 오래전부터 서로 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을 어겼기 때문이다. 1972년 남북한은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쌍방이 비방 중상은 물론 전단 또한 살포하지 않기로 했다. 1992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똑같은 합의를 했다. 노무현 정부 때(2004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민간단체에 의한 대북 전단 살포는 지속된다. 북한도 마찬가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을 남한에 살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전단 살포는 계속되었으나 남북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중지하기로 했다. 전단 살포 중단은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전단 살포가 남북 간 갈등으로 크게 비화한 것은 김정은 집권 이후 부인 리설주를 겨냥하여 포르노에 가까운 내용을 대북 전단에 실어 날리면서였다. 우리 정부는 탈북민 단체에 대해 전단 살포 중단을 설득하고 제지했으나 ‘표현의 자유’는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그러다가 2014년 10월 경기 연천에서 북한군은 대북 전단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하기까지 한다. 접경지 주민들은 대피했고, 우리 군의 대응 사격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조성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한민국 법원은 대북 전단에 대한 규제가 합법이라는 판결(2015년 1월 6일)을 내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을 예방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대북 전단 규제는 적법’하다는 것이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관계발전법'을 개정해 대북 전단 살포 금지를 법제화했다. 그러던 것이 윤석열 정부 들어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2023년 9월 26일)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대북 전단만으로 별도의 처벌 조항을 두는 것이 과잉금지에 해당한다는 것이지 평화와 안전을 위해 정부가 전단 살포를 단속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는 점까지 위헌으로 보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전단 살포로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나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행위자에게 경고하고, ‘필요한 경우 살포를 직접 제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단 살포 현장에서 그런 결정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단 살포로 이미 남북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는 제지가 가능하지만 사전에 이를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그런 결정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활동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지 않겠다고 이미 공언했다. 북한이 다시 오물풍선을 날리자 더 강력하게 대응할 것도 분명히 했다.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고 압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대북 전단 살포는 그로 인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첫째, 대북 전단을 보내도 북한 지역보다 전방 지역에 더 많이 떨어진다. 북쪽으로 부는 바람을 이용해 풍선을 보내야 하는데 바람이 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많이 불기 때문에 풍선을 제대로 올려보내기가 힘들다. 편서풍 영향으로 전단이 날아가다 군사분계선 인근 지역에 많이 떨어진다. 대북 전단이 살포되면 인근 부대 장병들이 가장 큰 고생을 한다. 대북 전단을 ‘비확인비행물’로 취급해 적 무인기가 뜬 것과 같은 조치를 하기 때문이다. 풍선 비행 이후 북한 도발의 우려 때문에 경계가 강화된다. 전단 처리는 말 그대로 스트레스다. 대북 전단 풍선이 DMZ 내에 있으면 미확인 지뢰지대로 회수하기도 어렵다. 둘째, 자극적인 전단 내용은 오히려 효과를 떨어뜨린다.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에 북한 주민들이 설득되기는커녕 되레 모욕감만 부추긴다. 북한 체제 비판이나 북한 지도자를 향한 외설적 공격은 북한 주민을 오히려 더 분노케 한다. 북한 주민이 전단을 주워 당국에 신고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감시 대상이 된다. 대북 전단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악화시키는 역설적 측면도 있다. 셋째, 전단 살포는 남북 접경지역 주민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접경지역 농민들은 민통선 출입이 제한된다. 영농 활동에 큰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접경지역을 찾는 관광객 수도 급감한다. 나라 전체적으로도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따르고 주식시장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내용과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에 근거해 대북 전단을 살포한다고 해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옳다. 물론 쉽진 않다. 그러나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풍선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전단 살포의 궁극적 목적인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체제 비방이나 내정간섭의 내용은 일절 거두고 북한 주민이 필요로 하는 용품을 보내는 것이다. USB를 보내더라도 한국 드라마나 K-팝을 담아 보내는 것이 낫다. 보내는 지역도 북·중 지역을 고려해 볼 만하다. 물론 발신자 표시 없이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북한 주민을 진심으로 돕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순수한 의도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단체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단체와는 엄격히 구분하되 보낼 때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말없이 보내는 것이다. 오로지 인도주의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대신 대북 전단 살포 단체가 돈벌이 수단으로 대북 전단을 보내는 것은 철저히 막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자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에게 진정 지속 가능한 대북 정책이 있는가 말이다. 북한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러한 행동을 반복할 수 없도록 하는 정책이다. 오물풍선을 보낸 것에 분개할 수는 있지만 왜 그런 것을 보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 일을 해내는 정치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정확한 현실 인식하에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정치를 리드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남북 관계의 정치적 비전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공감대를 확산해 나갈 수 있는 지도자, 여론을 선도해가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북 정책을 실현하는 참된 정치지도자를 소망한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