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수들의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자처한 기업들은 각각 완성차, 방산,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K-기업'의 저력을 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글로벌 무대를 장악한 K-산업의 1등 DNA가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의 1등 공신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산업, 스포츠업계에 따르면 한국 양궁이 '2024 파리 올림픽' 전 종목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배경에는 대한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의 지원이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한국 양궁과 인연을 맺은 건 정몽구 명예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1985년부터다. 정 회장은 아버지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양궁협회장을 2005년 이어받아 협회와 선수들을 물심양면 후원했다.
정 회장은 양궁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룹의 연구개발(R&D) 역량을 적극 활용했다. 선수들의 훈련과 실전 연습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현대차 선행연구센터에 각종 첨단 장비를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정밀 로봇을 상대로 1:1 매치를 진행해 경기 감각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준 '개인 훈련 슈팅로봇', 슈팅 자세를 정밀 분석하는 '야외 훈련 다중카메라', 직사광선을 반사하고 복사에너지 방출을 극대화하는 '복사냉각 모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선수들의 생체정보를 측정하는 '심박수 측정장치'와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장비인 '고정밀 슈팅머신'도 개발했다.
정 회장은 이번 결과에 대해 "미국, 유럽, 아시아에는 워낙 잘하는 국가가 많아 긴장을 많이 했고, 결과도 이 정도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선대회장부터 지켜온 노력과 선수들, 협회, 지원 스텝이 모두 한마음으로 일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던 펜싱과 비록 8강에 실패했지만 가능성을 입증한 핸드볼의 저력도 SK그룹의 든든한 후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SK텔레콤은 2003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아 20년간 총 300억원을 지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인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은 현재 대한펜싱협회 회장이다.
SK그룹은 이번 올림픽에서 유일한 단체 구기 종목인 핸드볼도 후원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학창 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핸드볼 종목에 대한 애정이 깊다. 2008년부터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올림픽을 앞둔 지난 5월 핸드볼 선수들을 워커힐 호텔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11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이룬 여자 핸드볼 팀의 도전은 8강에서 좌절됐지만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을 상대로 멋진 경기를 펼쳐 다음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안겼다.
깜짝 메달로 주목을 받은 사격은 한화그룹이 오랫동안 후원했다. '사격 마니아'로 알려진 김승연 회장과 한화그룹은 2000년대 초반 불모지에 가깝던 한국 사격계의 성장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에 나섰다. 과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 선수가 소속팀을 찾지 못하자 김 회장은 2001년 한화갤러리아사격단을 창단했고, 200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는 대한사격연맹 회장사를 맡아 물심양면 후원했다. 한화그룹이 사격계의 발전을 위해 사용한 금액만 200억원 이상이다.
재계에 스포츠 후원은 세계 시장을 무대로 기업 홍보와 국위선양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윈윈이다. 특히 기업이 가진 자원과 전문성을 활용해 본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첨단 기술을 활용해 스포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회공헌(CSR) 활동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입증한 한국 기업과, 이런 1등 기업의 DNA로 무장한 한국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기업과 선수들의 동반 금메달 플레이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