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환시장의 취약성이 재확인된 셈이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과 자본시장 패닉 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달러당 1400원대를 위협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2원 급락한 1359.0원에 개장해 1374.8원으로 마감(오후 3시 30분 종가)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에 달러가 약세를 보이며 장중 1355원대까지 낙폭을 키웠다. 1350원대 환율은 지난 5월 26일(1355.5원·장중 저가) 이후 69일 만이다.
하지만 금리 인하 근거로 제시된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공포 수준으로 확산하고 엔화 강세까지 더해져 국내 증시가 폭락 장세를 보이자 환율도 속절없이 1370원대를 내줬다. 불과 몇 시간 만에 20원 가까이 오르내린 것이다.
강세로 돌아선 엔화도 원·달러 환율 급변동에 한몫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42엔대까지 하락했다. 지난 1월 초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미국 경제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면서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지속된 데다가 9월 연준의 빅컷으로 미·일 간 금리 차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퍼지면서 엔화 가치가 고공 행진을 벌였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만 해도 161엔대까지 치솟았다가 불과 한 달 만에 20엔 가까이 급락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당분간 원·엔 간 동조화 현상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주 환율 밴드는 1330~1380원 수준으로 본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을 추가로 자극할 변수도 산적해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가 대표적이다. 이란·이스라엘 충돌 격화는 국제 유가와 더불어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악재다.
또 국내 증시의 패닉 장세가 이어질 경우 달러화 유출이 급증해 환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날 금융당국은 코스피와 코스닥 급락세가 심상치 않자 서킷 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까지 발동했다.
이주원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에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잔존하는 상황이라 환율 상단이 내려오려면 투자 심리 안정이 필요하다"며 "위험 회피 심리가 유입되는지 여부가 환율 하락 폭을 결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환율 급등에 대한 걱정이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주식시장 급락이 변수로 작용하긴 했지만 외환시장의 주안점이 약달러로 옮겨가면서 원화도 위험 통화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달러 가치 하락이라는 대세적 흐름에 휩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날 긴급 합동 콘퍼런스콜을 열고 국내외 금융시장에 대한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필요 시 상황별 대응 계획에 따라 긴밀히 공조 대응할 방침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우리 자본·외환시장의 체력을 강화하고 대외 안전판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