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를 위한 것'에서 '주주 이익을 위한 것'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되면서, 이번 개정이 비상장기업 상장 추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오히려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비상장기업 237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년 내 추진(13.1%)', '장기적 추진(33.3%)' 등 상장을 추진 중인 기업이 46.4%에 달했다고 28일 발표했다. 그러나 상장 추진 기업의 36.2%는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상장계획을 재검토(34.5%)' 또는'철회(1.7%)'하겠다고 밝혔다.
응답기업들은 비상장사들이 상장을 지금보다 더욱 꺼리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및 배임 등 이사의 책임 가중(70.8%)'을 손에 꼽았다. 이어서 △주주 간 이견 발생 시 의사결정 지연(40.4%) △경영 보수화 우려(37.3%) △지배구조 등 분쟁 가능성 확대(28.0%) △이익상충 시 주주이익에 기반한 의사결정 확대(24.2%) △추상적 규정으로 위법성 사전판단 어려움(16.1%) 등도 이유로 제시됐다.
특히 최근 상법과 달리 상장사에만 적용되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입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이 또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자본시장법은 상법·민법 등 민사법에 기반하고 있다"며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을 개정한다 해도 자본다수결 원칙과 법인 제도 등 우리 민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 소지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송승혁 대한상의 금융산업팀장은 "비상장사들도 상장사와 마찬가지로 충실의무 확대 시 이사의 책임 가중 및 경영보수화, 주주 간 이견 등을 우려하고 있었다"며 "특히 기업이 이런 문제로 상장을 꺼린다면 밸류업의 취지에 역행해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정책당국이 감안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