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분열한 집안은 바로 설 수 없습니다(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58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 한 '분열의 집(House Divided)'이라는 연설의 일부입니다. 노예제 찬성·반대를 두고 미국이 둘로 쪼개져 있을 때,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이같은 말을 했습니다. 수많은 주(State)의 연합체인 미국이 노예제로 의견이 갈리면 결국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담겼습니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고, 상대 후보의 지지율을 깎기 위해 내뱉은 각종 의혹들을 거대 야당이 문제 삼으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국민의힘의 이번 전당대회를 두고 '분당대회'라고 비꼬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입니다. 국민의힘은 말 그대로 '분열의 집'이 됐습니다.
갈등의 신호탄, '문자 논란'
전당대회 본선 초반인 지난 4일, 한동훈 당대표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텔레그램 문자를 읽고도 무시했다는 이른바 '읽씹'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김규완 CBS 논설실장이 라디오 방송에서 김 여사와 한 후보의 문자 내용을 편집해 공개한 것인데, 이 논란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변질시키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내용은 올해 1월 김 여사가 자신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으로 부담을 줘서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후보의 의향에 따라 사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한 후보가 이에 답장을 하지 않았고, 이를 접한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전해집니다.
'친윤(친윤석열)' 그룹은 문자 공개 직후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났습니다. 원조 친윤으로 분류되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 후보의 사과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친윤 그룹에 속하는 원희룡 후보도 "기본적 도리와 예의를 외면한 모욕"이라며 뾰족하게 날을 세웠습니다.
여기에 한 후보가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김 여사가 보낸 문자 중 '요 며칠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김 여사와 친한 것으로 알려진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구체적 주장을 더한 겁니다. 장 전 최고위원은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을 운영했다"며 "한 후보가 얼마나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전했습니다.
원 후보는 또 이 논란에 "사실이라면 중대 범죄행위고, 한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정상적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韓 사퇴 연판장'에 '총선 고의 패배설'까지
사태는 점입가경으로 치달았습니다. 2023년 전대에서 나경원 당시 당대표 후보 출마를 좌절시킨 '제2의 연판장 사태'까지 벌어진 겁니다. 원외 인사이자 당 선거관리위원인 박종진 인천 서을 당협위원장이 한 후보의 사퇴 동의 여부를 다른 원외 인사들에게 물어보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원 후보 측이 김 여사의 사과 요청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한 후보의 사퇴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고 원외인사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논란이 불거지자 원 후보 측은 "캠프 내부를 전수조사한 결과 원외 인사들이 연락을 하는데 전혀 관여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박 당협위원장은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선관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원 후보는 문자 논란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한 후보의 총선 고의 패배설까지 제기했습니다. 지난 10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열린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PK) 합동연설회가 끝난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영부인이 집권여당 책임자에게 얘기한 것이라면 그 의사소통을 통해 사실 윤 대통령도 설득할 수 있는 한줄기 빛, 최후의 희망 아니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없는 것도 만들어야 할 총선 승리의 절박한 상황에서 혹시 총선을 고의로 패배로 이끈 것은 아닌지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이처럼 원 후보와 한 후보의 갈등이 격화되자 '원·한 갈등'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고,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사태마저 벌어졌습니다. 지난 16일 천안 합동연설회 자리에서 원 후보 지지자가 한 후보의 연설 시간에 "배신자"라고 소리를 치며 난동을 부렸고, 제지하려는 한 후보 지지자에게 의자도 집어 던지려 했습니다.
한동훈 '폭탄발언'…"나경원, 패스트트랙 공소 취하 부탁"
한 후보의 입도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 17일 CBS 후보자 토론회에서 나경원 후보가 '법무부 장관 때 한 일이 뭐냐'는 식으로 비판하자, 한 후보가 "나 후보는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고 부탁하신 적 있지 않냐"고 맞받은 겁니다.
나 후보가 법무부 장관에게 본인 사건 공소 취소를 청탁한 것처럼 읽히는 대목입니다. 이에 정치권 안팎으로 여당 유력 정치인들이 법 위에서 공소권을 농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나 후보는 이후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적극 해명하며 한 후보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당시 사건으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23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이 기소됐다"며 "국회에서 정치적 행위로 충돌한 것이기에 우리 당과 민주당 의원들 모두 공소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야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공소권 거래이자 국정농단"이라며 수사를 촉구했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도 "이런 청탁은 수사 대상이며, 한 후보가 불법적 청탁을 받고 왜 신고하지 않았는지도 수사 대상"이라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원 후보는 이 반응들을 묶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내부 총질, 이러다 다 죽는다"며 한 후보를 에둘러 비판했습니다.
정치꾼 혹은 정치가…스스로 되돌아 봐야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거치며 친윤과 친한(친한동훈), 비한(비한동훈)으로 계파가 갈리는 모양새입니다. 다른 후보들을 공격하고, 그 공격 때문에 계파가 쪼개지고, 지지자들 간에 골이 깊어지면 당에 좋을 게 없습니다. 특히 국민의힘처럼 앞으로 4년 동안 192석의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민주당은 아직 전당대회 초반이지만, 이재명 전 대표가 지역순회경선에서 연일 90% 이상의 몰표를 받으며 연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전 대표 '일극체제'라는 비판이 있지만, 정부·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야당 입장에선 오히려 좋은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 전 대표 산하에서 일사불란하게 정권과 맞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당이 계속 분열하고 자중지란을 일으킬 수록 결국 야당에만 좋은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국민의힘 당 대표가 정해집니다. 신임 당 대표가 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한 후보가 유력하다고는 하지만, 선거는 결국 투표함을 열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을 쪼개가면서까지 대표가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당 대표가 되려는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거대 야당과 어떻게 협치를 해서 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 허덕이는 국민들의 숨통을 틔워줄 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정치꾼은 다음 번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신학자이자, 정치 개혁가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가 한 말입니다. 4명의 당 대표 후보들이 스스로가 정치꾼인지, 정치가인지 되돌아 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