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에서 유학하다 방학을 맞아 A380편으로 귀국한 대학원생 이리나씨(29)는 갈수록 오르는 환율에 마음이 무겁다. 학기 시작 전 미리 가서 공부하려던 이씨는 현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출국도 8월 말로 미뤘다.
이씨 부모도 고심이 깊다. 곧 학비를 송금해야 하는데 지난해보다 600만원가량 더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씨 부친은 "월급쟁이 수입이 뻔한데 학업을 중단하라고 할 수도 없어 마이너스 대출을 추가로 받을 계획"이라며 "자고 나면 오르는 환율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7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 1~6월 원·달러 평균 환율은 1349.50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상반기(1350.93원)보다 겨우 1.43원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달러당 평균 1294.97원이었던 환율은 지정학적 위기, 미국 기준금리 인하 지연, 초엔저 등의 악재가 겹치며 금융위기급으로 치솟았다.
엔데믹 전환에 올해 1~5월 국제선 여객 수는 지난해보다 48.6% 급증했지만 실적은 오히려 악화됐다. 대한항공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27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달러로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공기 리스 비중이 높아 환율 변동에 더 민감한 저비용항공사(LCC)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의 영업이익은 각각 8.2%, 64.3%나 떨어졌다.
반도체 등이 주력 업종인 대기업 역시 무풍지대는 아니다. 환율이 상승하면 매출 증가 효과를 누리지만 원자재 가격도 덩달아 오른다. 올 상반기 수입액은 3117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6.5% 감소했다.
기업들이 고환율을 피하기 위해 수입을 늦추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 조사국 관계자는 "반도체 역시 원자재나 장비를 수입하는 업종이라 손해를 줄이기 위해 수입 시기를 지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더 취약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수출기업 30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정 환율은 1262원이었다. 항공부품 제조업체인 A사는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5% 줄었지만 영업손실은 무려 50% 확대됐다. 같은 기간 핵심 원자재인 알루미늄 가격이 13% 이상 오른 데다 고환율까지 덮친 결과다.
태양전지를 수입해 국내에서 태양광 패널을 제조해 판매하는 이진섭 에스지에너지 대표는 “지난해 1200원대 원·달러 환율이 올해 1300원대 후반까지 상승하면서 원자재 매입 원가가 1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태양광 시장은 판매가가 정해져 있어 원가가 오른 만큼 판매가를 높일 수 없는 구조”라며 “그대로 기업손실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중소기업 30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 수출기업이 영업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적절하다고 보는 원·달러 환율은 1262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