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힘입어 방일 외국인 여행객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관광 산업은 자동차에 이어 일본 제2의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소비한 돈이 일본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면서 이들이 일본에서 주로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도 중요해졌다.
최근 일본 관광청이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음식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라멘은 ‘야키니쿠’와 같은 고기 요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3위인 스시보다도 앞선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리뷰분석업체 '모브(mov)'와 함께 구글맵에 올라온 약 4만건의 음식점 평점과 댓글을 조사한 결과 라멘이 스시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가뜩이나 엔화 약세로 일본 물가가 저렴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라멘은 특히 가성비 높은 메뉴로 꼽혔다. 리뷰 가운데는 라멘의 맛에 대한 평가도 있었지만 ‘면 추가가 공짜라니 믿을 수 없다’ ‘보통 사이즈로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와 같이 가격 대비 많은 양에 대한 호평도 다수였다. 언어별로는 영어 비중이 높은 편이었다.
현재 일본 내 라멘 전문점은 2만개를 넘어선 상태다. 지난달 29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전국의 라멘점은 6월 기준 2만1100곳으로 나타났다. 인구 1만명당 점포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야마가타현이었다. 2위가 니가타현, 3위가 아키타현 순이었다.
또한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라멘 전문점’을 포함한 ‘중화요리점’ 시장 규모는 약 1조3700억엔(약 11조7735억원)이었다. 이 중 라멘 가게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라멘 경제' 규모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1위를 차지한 야마가타현은 ‘라멘 사랑’으로 잘 알려진 곳으로, 일본 총무성이 조사한 가계 지출액 중 라멘이 차지하는 비중에 있어서도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야마가타현은 이 같은 지역 특성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면(麵) 문화’를 전면에 내세워 지역 활성화로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2023년에는 ‘라멘현, 소바 왕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상표 등록할 만큼 지역 내에 라멘과 소바 가게가 많다.
또한 야마가타현 난요(南陽)시는 시청에 ‘라멘과’까지 두고 있다. 아카유(赤湯) 온천과 와인 등 다른 자랑거리도 있지만 인구 3만명 미만인 소도시에 라멘점만 50개가 넘을 정도로 라멘 사랑이 각별한 곳이다. 이곳은 ‘아카(赤) 미소’라고 하는 붉은 된장 국물을 기반으로 한 라멘이 유명하다.
난요시는 ‘라멘 지도’를 작성해 라멘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각 점포마다 손님들에게 오리지널 카드를 배포하는 ‘카드 랠리’ 캠페인도 벌였다. 인기 만화 ‘라멘 너무 좋아 고이즈미씨’와 협력해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진행한 캠페인에는 총 2만700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지역 숙박시설도 덩달아 특수를 누리며 2개월 동안 약 1억7000만엔(약 14억5984만원)의 경제 효과가 창출됐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라멘 만들기 체험 투어’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라멘과 주무관’을 겸하고 있는 시라이와 다카오 난요 시장은 “라멘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온천 등 다른 매력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야마가타현을 ‘라멘 성지’로 만들기 위한 활동도 시작됐다. ‘야마라(야마가타 라멘)’를 상표 등록하고, 라멘점 약 200개를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2024년 예산에는 사이트 운영비와 외국어 안내 등에 약 3000만엔(약 2억 5762만원)을 책정했다.
또 다른 라멘 유명 지역인 니가타현 역시 라멘을 이용한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220개 라멘 전문 매장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고, 올해 4월에는 JR(일본철도) 니가타역과 연결된 건물 안에 ‘니가타 라멘 골목’을 오픈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일본이 관광산업으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반도체와 철강 수출액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방일객 소비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10∼12월에는 연 환산 4조6000억엔(약 41조원) 규모였던 것이 코로나19에서 완전히 회복된 올해는 큰 폭으로 뛰어 2024년 1∼3월 방일객 소비액이 연 환산 기준 7조2000억엔(약 63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자동차 수출액인 17조3000억엔(약 150조원)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지만 2위인 반도체 등 전자부품 5조5000억엔(약 48조원), 3위인 철강 4조5000억엔(약 39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