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기자의 부자보고서] 총자산 50억원 부자는 일반인보다 행복할까?

2024-06-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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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에서 부자와 일반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부자들의 삶의 만족도가 눈에 띄게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총자산이 50억원가량의 부자의 70%가 삶에 만족한다고 답변했으나 일반인은 35%가 만족하는 데 그쳤다.

다만 이는 국내에서의 조사 결과로 전 세계적으로는 다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OECD 국가에서는 부자보다 일반인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았다는 반례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국가 중 경제력으로 상위권이지만 주관적 행복도 면에서는 최하위권으로 나타나는 등 특이한 면이 있어 일반화하기 조심스럽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1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설문조사에서 부자들이 일반인보다 훨씬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코리아리서치를 통해서 지난해 12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 746명과 1억원 이상 10억원 미만을 보유한 부유층 1139명, 1억원 미만을 보유한 일반인 712명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부자와 일반인의 삶의 만족도 격차가 컸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은 34.9%만 삶에 만족한다고 응답했으나 부자는 69.8%가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35%포인트(p) 이상 차이 나는 수준이다. 성별과 연령 등 다른 요인에 따라서는 뚜렷한 경향성이 보이지 않았으나, 경제력(총자산) 측면에서 살펴보면 삶의 만족도에 대한 뚜렷한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제력이 좋은 부자의 삶의 만족도가 일반인보다 뚜렷하게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의미다.

세부적으로 총자산 구간별로 삶의 만족도를 살펴보면 10억원 미만 구간에서는 42.4%가, 20억원 미만 구간에서는 56.9%가, 30억원 미만 구간에서는 65.8%가, 40억원 미만 구간에서는 66.9%가, 50억원 미만 구간에서는 70.7%가 삶에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이를 감안하면 해당 구간에서는 총자산이 많아질수록 삶의 만족도가 확연히 높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총자산 60억원 미만 구간에서는 66.7%가, 70억원 미만 구간에서는 68%가 삶에 만족한다고 답변해 50억원 미만 구간(70.7%)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100억원 이상 구간에서도 78.6%로 8%p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설명했다. 행복 경제학의 대가인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4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돈과 행복의 모순적 현상을 지적했다.

경제력이 높아지면 행복도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 이상 소득이 증가해 기본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는 경제력이 개선되더라도 행복이 함께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특정 시점까지는 돈과 행복의 정적(+) 상관 관계를 확인할 수 있지만, 경제력이 개선된 이후에는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에 대해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명명했다.

이후 경제학자들은 이스털린의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 행복과 경제력은 절대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비교를 통한 상대적 가치로 측정되기 때문이라는 해석, 일정 수준의 경제력이 확보된 후에는 아무리 경제력이 높아져도 행복을 높여주지는 못한다는 해석 등을 내놨다. 이를 감안해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국내에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력의 한계점을 총자산 50억원 정도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눈에 띄는 점은 세부적인 삶의 여러 요소를 살펴보더라도 부자와 일반인의 행복도 격차가 상당했다는 점이다. 가족관계, 여가생활, 자산규모, 사회생활, 업무, 외모 등의 여러 요소에 대한 삶의 만족도를 설문 조사한 결과 부자와 일반인의 격차가 상당했다.

가족 관계에 대한 질문에 부자의 72.7%, 일반인의 54.1%가 만족스럽다고 답해 양쪽 모두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은 요소로 꼽혔다. 반면 부자는 외모 요소에서 만족스럽다고 답변한 비율이 50.6%로 다른 요소 대비 가장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은 자산규모가 만족스럽다는 답변이 15.2%에 불과해 가장 만족도가 낮은 요소로 꼽혔다.

이외에 부자는 여가생활(60.8%), 자산규모(60.7%), 사회생활(57.5%), 업무(54.2%) 등에서도 만족한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반면 일반인은 가족 관계를 제외하면 절반 이상이 만족한다고 답변하지 않았다. 여가생활이 37.8%로 가족 관계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만족도가 높은 요소였다. 사회생활(30.7%), 외모(29.9%), 업무(27.9%)에서 만족스럽다는 답변은 30% 안팎에 불과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부자들의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해당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경제적 만족(부자들만 대상으로 하므로 큰 차이 없음)보다 가족 및 사회생활에서의 인간관계가 더 유효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다만 재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만족도 조사가 국내에만 국한돼 글로벌 시각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UN 산하 지속가능발전해결책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23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주관적 행복도는 조사 대상국가 137개국 중 57위로 집계됐다. 38개 OECD 회원국 중에서는 35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한국의 경제지표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력과 행복도가 정적(+) 상관 관계로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OECD 국가 중에서는 일반인이 부자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며 "국내에서는 부자가 일반인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인식되기는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도 보편타당한 일로 생각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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