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도 치솟는 먹거리 물가를 잡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 중심의 민생물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물가 안정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하며 식품·외식 업계를 상대로 연일 가격 인하 압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지수는 113.99(2020년=100)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인 2022년 4월(106.83) 대비 6.7% 올랐다. 지난 2년간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올해 3월 13일 한 차관은 19개 식품 기업과 물가 안정을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주요 곡물·유지류 가격이 하락했는데도 원자재 가격 상승기에 인상한 식품 가격이 지속하는 걸 보고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농협유통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과도한 가격 인상, 담합 같은 시장 교란 행위와 불공정 행위로 폭리를 취하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정부도 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 대응하겠지만 민간에서도 원재료 비용 하락 부분을 가격에 반영하고 효율을 높여서 물가 안정에 함께 노력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강조하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이에 더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설탕 가격 담합 혐의로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현장 조사를 벌이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식품업계에 국제곡물가 인하를 반영해 소비자 판매가격을 낮추라고 요구했다. 결국 4월 식품업계가 줄줄이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CJ제일제당은 소비자 판매용 밀가루 3종 가격을 평균 6.6% 인하했다. 삼양사는 소비자 판매용 중력분 1kg과 3kg 제품 가격을 평균 6.0% 낮췄다. 오뚜기도 식용유 제품 가격을 평균 5% 줄였다.
이같이 윤석열 정부에서 기업을 상대로 한 가격 압박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등이 라면, 과자 가격을 내리기 전 정부의 물가 잡기 방식이 되풀이되는 셈이다.
당시에도 정부가 라면 가격을 지적하며 식품업계를 겨냥한 바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9~10월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이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원료는 많이 내렸는데 객관적으로 제품 값이 높은 것에 대해서는 경쟁을 촉진하도록 공정위가 담합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유통 구조도 면밀히 살펴 구조적 안정을 취하는 쪽으로 가야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가격 통제에 주요 식품 업계들은 제품 가격을 낮췄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주요 라면업체와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등 제과업체가 적게는 4.5%에서 많게는 약 7%까지 가격을 낮췄다. SPC 등 제빵업계도 평균 5% 가격을 인하했다.
식품·외식업체에 대한 정부의 물가 안정 총력전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올 3월 열렸던 간담회 이후 2개월 만에 식품·외식 업체 대표들을 소집했다. 한 차관은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17개 식품 기업과 외식업계 10개사가 참여했다.
정부 대응은 다시 가격 인상 억제에 맞춰졌다. 한 차관은 간담회에서 “최근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일부 가공식품 및 외식 업계의 가격 인상 움직임은 서민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면서 “물가 안정은 내수 회복과 민생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나서고 있다. 시장 모니터링 전담팀을 구성·운영 중인 공정위는 '소비자기본법' 내 '사업자의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 지정 고시'를 개정해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용량 등을 축소하는 ‘슈링크플레이션’ 행위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고시를 통해 용량 변경을 표시해야 하는 제품은 라면, 아이스크림, 과자, 우유 등 가공식품 80개와 샴푸, 화장지 등 생활용품 39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식품·유통 기업을 상대로 한 가격 통제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 통제식 정책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내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용량 등을 몰래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계속해서 기업들을 상대로 과도한 가격 인하 압박을 가하게 될 경우, 슈링크플레이션이나 급격한 가격 인상 등의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소비자들은 물가 안정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