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 한 달 반 일정으로 인도 총선이 막을 올린다. 최근 중국을 제치고 인구 1위 국가로 올라선 인도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로도 불린다. 1947년 200년 가까운 기나긴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후 헌정 중단 사태 한 번 없이 선거를 통해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그리하여 인구 14억명의 인도는 자유 민주주의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불린다. 10년 전 나렌드라 모디 정권이 출범한 이후 힌두 근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눈부신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제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할 경우 그는 현대 인도의 ‘국부(國父)’ 격 인물이자 1대 총리를 지냈던 자와할랄 네루(1889~1964)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록을 갖게 된다.
모디 총리는 자신의 3연임을 확신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지난달 각료 전체회의를 소집해 총선 이후 100일 국정 운영의 우선 과제까지 논의했다. 그가 승리를 자신하는 근거는 수년째 70%대를 유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율과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에 몰리는 막대한 정치 후원금이다. 그동안 모디의 고성장·친기업 정책에 수혜를 입은 인도 대기업들은 집권당에 정치 자금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미·중 관계 악화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공급망 재구성도 인도에 유리한 환경이다. 무려 3800㎞의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인 중국에서 자본 유출을 걱정할 정도로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반면 새로운 수출기지로 떠오르는 인도에는 외국인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4년 모디 정부 출범 이후 인도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은 무려 3배로 늘어났다. G20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인도의 경제 규모는 모디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1위에서 지난해 영국을 제치고 5위로 올라섰다. 이대로 가면 5~6년 후엔 독일과 일본을 추월해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대 경제대국이 될 전망이다. 모디의 3연임을 낙관하는 모건스탠리와 JP모건체이스 등 서방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인도에 대한 주식과 채권 비중을 적극 늘리고 있다. 만에 하나 모디 총리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인도 주식이 25% 이상 폭락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등장하고 있다.
1950년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바드나가르에서 태어난 모디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버스터미널에서 전통차와 빵을 팔던 가난한 소년으로 자랐다. 하층 카스트 출신인 모디는 21살 때인 1971년 힌두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에 가입해 빈민층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최고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써나간다. 그는 1980년 RSS를 기반으로 조직된 정당인 BJP에 가입해 2001년 구자라트주에서 총리로 선출된 모디는 강력한 개방정책을 펼치고 도로, 용수, 전력 등 집중적인 인프라 개선에 나서 국내외 기업들이 구자라크주에 몰리게 했다. 그가 취임한 이후 13년간 구자라트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3%로 인도 평균 성장률의 두 배에 이르렀다. 중앙 정치의 관심을 받던 그는 '모디 돌풍'을 일으키며 2014년 하층 카스트 출신으로는 처음 인도 총리에 올랐다.
10년의 명암
지난 10년간 모디 총리의 국정 수행 기록을 살펴보자. 우선 도로와 철도 공항 등 인프라 개선과 세제 개혁을 통해 서비스 분야에 비해 취약한 제조업 발전 기반 마련에 착수했다. 인도 28개 주에 난립해 있던 10여 개의 간접세를 상품·서비스세(GST)로 통합해 인도 시장의 복잡한 세제를 단일화했고 동시에 세수와 공공지출 확대 기반을 마련했다. 그동안 주민등록 제도가 없어 신분 증명이 어려웠으나 생체인식 정보 기반인 아다르 카드 도입을 통해 디지털 경제와 현금 없는 신용사회로 신속히 탈바꿈시켰다. 게다가 낙후된 농촌 지역에는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어 주민들 삶이 크게 바뀌고 빈민층을 대상으로 무료 식량 배급과 주택, 건강보험 제공 등 사회복지사업도 크게 늘렸다. 하층 카스트 출신으로 그의 서민적 이미지에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정책이 확대되며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모디 정부가 자랑하는 눈부신 고성장 업적 속에는 어두은 그림자도 숨어 있다. 2016년 그가 부정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실시한 무리한 화폐개혁과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 실시한 강력한 록다운(봉쇄) 조치로 인도 경제는 대혼란을 겪기도 했다. 인도가 고성장의 길을 걸으며 소비력을 갖춘 중산층이 늘어나고 해외 기업들이 그들을 공략하기 위해 인도 시장에 몰려오는 가운데 전통적인 부의 세습과 양극화 문제는 사회 안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인도 전체 인구 중 90%는 연 소득이 3500달러 이하 수준이다. 인도 경제 발전의 메인 동력은 정부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는 대기업 집단과 소수의 부유층이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는 모디가 자랑하는 인도의 경제적 성과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미미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디에게는 국가 리더에게 필요한 특별한 무엇이 있는 듯하다. 힌두 민족주의자 특유의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화려한 쇼맨십을 무기로 국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계속 제시하며 인도의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간다.
BJP는 2014년 총선에서 '모디 돌풍'에 힘입어 놀랍게도 절반이 넘는 282석을 차지하며 집권했다. 5년 후인 2019년에는 303석을 차지하며 30여 년 만에 인도 단일 정당으로서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2019년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압승을 거둔 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모디 정부의 단호한 대응 때문이었다. 선거 직전 파키스탄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 경찰관 40명이 이슬람 무장단체 공격으로 숨지자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 공습을 단행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3차례 전쟁을 치렀고, 핵전쟁 직전까지도 갔던 파키스탄에 대한 응징은 모디를 결단력 있는 인물로 부각시키고, 선거의 주요 이슈를 경제 둔화에서 안보로 전환시켰다.
갑부들의 정치적 후원금이 대거 몰리는 BJP는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충성도가 매우 높은 당원들의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국내 언론은 대부분 모디 정부에 길들여져 고분고분해졌다. 인도 전역에 걸쳐 신문이나 TV 광고는 모디 총리 얼굴과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다. 여당은 지난해 뉴델리에서 G20 정상회의를 주재한 모디 총리를 '세계의 스승(Vishwaguru)'으로 선전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BJP를 주축으로 한 중도우파연합 '국민민주동맹(NDA)'은 이번 총선에서 전체 534석 중 약 70%에 달하는 최소 378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BJP의 현재 의석수(303석)를 훨씬 웃돈다. 앞서 BJP는 자체 의석수로 370석, NDA의 의석수 400석을 목표로 세운 바 있다.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당(INC)는 '간디-네루' 가문이 지배해온 정당으로 2014년 모디의 거센 돌풍 앞에서 겨우 44석을 얻는 데 그쳤다. 야권은 지난해 INC와 26개 정당이 뭉친 '인디아'가 결성되었으나 이번에도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말리카르준 카르게 (Mallikarjun Kharge) INC 총재(80)는 상원의원과 장관을 지낸 베테랑 정치인이지만 모디 총리의 대중적 지지와 견주지 못한다. 그는 최근 선거 유세에서 "BJP가 다시 집권하면 모디의 독재가 늘어날 것"이라며 "민주주의는 무너질 것이며, 모디는 러시아에서 푸틴이 하는 것처럼 나라를 운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모디 아니면 누구?"라는 인식이 관망자적 유권자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
‘성장의 인도’ ‘강한 인도’
모디 정부는 지난해 독립 100주년(2047년)이 되는 해에 인도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긴 여정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선포했다. ‘성장의 인도’를 바탕으로 ‘강한 인도’ 건설을 추구해온 모디 정부는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며 군사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외교적으로 사안별로 동맹을 추구하는 신(新)비동맹 정책으로 인도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모두에게서 구애를 받고 있는 귀하신 몸이다. 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글로벌 사우스'의 맏형 격으로 우뚝 서 있다. 오는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될지라도 인도에만큼은 관계를 악화시킬 만한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인도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대상으로 꼽히는 이유다.
지난달 11일 모디 총리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반(反) 무슬림법으로 비판받는 '시민권 개정법(CAA)'의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2019년 법안 통과 후 인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이슬람교도의 거센 반발로 4년 동안 시행이 미뤄졌지만 총선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실시된 것이다. 얼마 전엔 수도 뉴델리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부패 혐의로 야당 인사들이 체포되자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모디 총리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힌두 민족주의’가 ‘전체주의’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지만 모디 총리의 3연임을 가로막지는 못할 전망이다. 최근 미국 퓨리서치(Pew Research) 센터가 밝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0% 넘는 인도 국민들은 모디와 같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선호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과 통치 스타일이 다르지만 모디는 네루 총리 이후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