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꿈이 대통령 아이가!"
YS(김영삼), DJ(김대중), JP(김종필). 제3공화국 군사정권이 권력을 잡은 196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전반기까지 30년 넘도록 대한민국 정치사를 뒤흔든 격동의 삼김(三金) 시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곁에서 묵묵히 내조를 해온 손명순 여사가 지난 7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 전 대통령이 2015년 11월 22일 서거한 뒤 약 9년이 흘렀다.
손 여사는 1929년 1월 16일 경남 김해 진영에서 태어났다. 1949년 이화여대 약학과에 수석 입학한 고인은 1951년 3학년 재학 중 장택상 국회 부의장 비서였던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고인은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내조의 달인'이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초선 국회의원 시절 하루에 한 말씩 밥을 지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 전 대통령 자택을 찾는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서다. 당시 김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한 손님들은 언제든 된장을 푼 시래깃국을 대접받았다고 한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영부인 시절에는 자신이 입는 모든 옷 상표를 떼어내고 입었다. 구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식기는 일절 쓰지 않았고, 전임자와 똑같은 디자인의 식기를 사용할 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부인이 참석해야 할 공식적인 대외활동 외에는 눈에 띄는 활동도 삼갔다. 결혼 후에도 김 전 대통령을 존칭으로 높여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은 필요할 때는 바깥 일에 나서는 '여걸(女傑)'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하나회'를 중심으로 제5공화국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23일간 단식 투쟁을 할 때가 그랬다. 1983년 5월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맞서 단식을 했을 때 고인은 직접 외신 기자들에게 한 통 한 통 전화를 돌렸다. 신군부 실상을 알리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한 김 전 대통령의 노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
평소 김 전 대통령에게 존대를 하던 손 여사였지만 필요할 때는 김 전 대통령을 혼내기도 했다. 고인은 김 전 대통령에게 중요한 약속을 받아야 할 때면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니, 꿈이 대통령 아이가!"라며 그를 다그쳤다.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던 김 전 대통령도 이때만큼은 고집을 꺾었다고 한다.
손 여사 별세 후 정치권에선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뒤엔 손 여사가 있었다"며 손 여사를 높이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참모진에게 "손 여사께서 가시는 길을 최고 예우로 모시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나 손명순 여사께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참으로 오랜 시간 헌신하셨다"며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큰 기여를 하셨다. 온 국민이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편히 잠드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김 전 대통령을 내조하시고 싸울 땐 같이 싸우신 대단한 분이셨다"며 "대단히 강하시고 많은 역할을 한 분이셨다"며 고인을 기렸다.
손 여사 빈소에는 상도동계 출신 김무성 전 의원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박상범 전 보훈처장,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등 정치인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손 여사 유족들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10일까지 조문을 받는다. 손 여사 장례는 닷새간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1일 오전 8시다. 손 여사는 국립서울현충원 김 전 대통령 묘역에 합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