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매장을 찾은 이들의 목적은 초콜릿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초콜릿을 만든 ‘오시’ 파티시에를 직접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다수 존재했다. 이들은 자신의 ‘오시’ 파티시에를 찾아 사인을 받고 사진 촬영도 했다.
‘오시(推し)’는 ‘밀다’라는 일본어 동사의 명사형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아이돌 가수, 연기자, 스포츠 선수 등 자신이 가장 응원하는 스타, 즉 요즘 말로 ‘최애’를 뜻한다. ‘오시카쓰(推し活)’는 이들이 활약하는 현장을 찾아 응원하거나 관련 상품을 구매하는 활동 등, 즉 ‘덕질’에 해당한다.
최근 일본에선 이 같은 ‘오시카쓰’가 유명 스타를 좇는 것에서 벗어나 취미와 음식 등의 다양한 분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또한 응원, 상품 구입과 같은 기존 행위에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한 30대 여성은 2021년에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로 이주했다. 그는 “계절마다 다른 마을 풍경을 볼 수 있어 즐겁다. 이건 성지 이주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계기가 된 것이 히로사키시를 무대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 ‘플라잉 위치’였다. 여성은 2015년 11월 히로사키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 마을 분위기를 포함해 작품과 완벽히 똑같은 모습을 한 히로사키 풍경에 감명을 받았다.
이후 두 달에 한 번꼴로 마을을 드나들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지역 간 이동 자체가 힘들어지자 아예 이주를 결심했다.
성지 이주에 대해 정통한 지바 이쿠타로 교토분쿄대학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에서 ‘성지 이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부터다. 최근에는 이바라기현 오아라이마치의 ‘걸스 앤드 판처’, 시즈오카현 누마즈시의 ‘러브라이브! 선샤인!!’ 등 애니메이션과 관련해 100명 정도가 이주하기도 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들로서는 반가운 현상이다. 누마즈시는 2월에 ‘성지 이주’ 희망자를 대상으로 한 상담회도 개최했다.
기존에는 없었던 '오시카쓰'는 또 있다. 불상을 모시는 제단인 불단(仏壇) 대신 '오시단(推し壇)'을 집 안에 만들어 '오시'를 위해 기도하거나 자신의 바람을 염원하는 팬들도 있다.
일본에서는 집 안에 작은 불단을 마련해 두고 먼저 떠난 가족이나 조상의 명복을 비는 문화가 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한 불교용품 업체가 출시한 ‘오시단’이 이례적인 판매 기록을 세우고 있다.
재질은 보통의 불단과 같은 편백 나무지만 가격은 1만3750엔(약 12만원)으로 일반적인 불단보다 훨씬 저렴하다. ‘오시단’을 구매한 팬들은 여기에 불상 대신 ‘오시’의 사진이나 피규어 등으로 채우고 LED 조명을 둘러 화려하게 꾸며놓고 기도를 드린다.
해당 업체가 ‘오시단’을 제작해 지난해 10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판매 공지를 띄우자 15명에 불과했던 폴로어 수가 갑자기 100명을 넘어섰다. 일부 고령의 고객에게 의존해오던 노포 기업(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서는 ‘쾌거’였다. 판매 시작 후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인기몰이 중이다.
이처럼 ‘오시카쓰’가 기존 영역을 넘어 폭넓은 범위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견인하는 주된 층은 여성과 10~30대 젊은 층이다. 이들이 ‘오시카쓰’에 투자하는 금액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돌 콘서트 참가나 스포츠 관전, 야생조류 관찰을 위한 쌍안경 및 망원렌즈 수요가 늘고 있는데 '빅카메라'와 같은 일본의 대형 가전제품 매장에서 쌍안경을 찾는 구매자 대부분이 여성이다. 약 100종의 쌍안경을 취급하고 있는 빅카메라 유락쵸점 담당자는 “지금까지는 남성 손님이 중심이었지만 3~4년 전부터 여성 손님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90%가 여성들이며 10대도 많다”고 말했다.
카메라 매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과거에는 남성들이 직업적 이유로 망원 렌즈를 많이 구매했다면 현재는 20·30대 여성 고객들이 주 고객층을 이루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에 장착할 수 있는 간편한 망원 렌즈를 찾는 여성들이 크게 늘었다.
일본의 각종 카드회사들은 고객들에게 '오시카쓰'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소비 실태 파악에 나서고 있다. '오시'가 일본 경제를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