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업계에 따르면 챗GPT 등 새로운 생성형 AI가 속속 등장하며 메모리 시장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고 있다. 그간 메모리는 저렴한 제품을 많이 팔아 수익을 남기는 사실상 박리다매의 구조였다. 하지만 성능을 비롯해 용량, 특화 기능 등 최적의 제품을 원하는 수요가 늘며 범용이 아닌 고부가의 맞춤형 메모리 판매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부터 국내 메모리 기업이 ‘커스텀(Custom)’을 전략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지난달 배용철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장(부사장)은 “초거대 AI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응용별 요구사항에 기반한 다양한 메모리 포트폴리오를 시장에 제시하며 공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고객 맞춤형 메모리 플랫폼(Custom Memory Platform)’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는 AI 메모리 기술력과 연구·개발(R&D) 역량을 각 고객사의 니즈와 최적으로 융합하기 위한 플랫폼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를 통해 각 고객사에 특화된 AI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그러면서 “가령 어떤 고객에게는 용량과 전력 효율이 중요할 수 있고, 또 다른 고객은 대역폭과 정보처리 기능을 선호할 수 있다”며 “차세대 플랫폼을 통해 회사는 기존의 방식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선보이고, 각 고객사에 특화된 최적의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맞춤형 중심 메모리 시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있다. 보다 대규모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AI에 맞춰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게 HBM이다. 대신 기존 범용 D램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 고부가제품으로 분류된다.
고부가 메모리임에도 최근 들어 급증하는 수요 탓에 오히려 공급 부족이 심화하는 추세다. 이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역시 미래 먹거리인 HBM 시장에서 기술력 확보 등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당장에 올해 상반기 최대 접점은 5세대 제품(HBM3E)이 될 전망이다. 4세대(HBM3)까지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해 왔지만, 5세대부터는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까지 시장에 본격 진입할 예정이라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내 HBM3E를 양산한다는 목표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범용 메모리의 생산량 감소 또한 점쳐진다. 전체 반도체 캐파(생산능력)를 급격히 늘리긴 어려운 만큼 잘 팔리는 HBM 등 맞춤형 메모리에 집중할수록 반대로 범용이 차지하는 생산 비중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아울러 맞춤형 메모리는 응용처별뿐만 아니라 고객사 커스텀으로도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예컨대 SK하이닉스는 애플의 차세대 증강현실(AR) 기기 ‘비전 프로(Vision Pro)’에 들어가는 ‘R1’ 칩에 최적화한 특수 D램을 공급했다. 범용이 아닌 주문형 메모리로서 유의미한 사례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AI와 함께 HBM 등 고객 맞춤형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저지연성와이드IO(LLW·Low Latency Wide IO) D램도 마찬가지”라며 “향후 고객사가 범용이 아니라 좀 더 스페셜한 제품을 찾는다면 메모리 제조사가 이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시장이 점차 흘러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