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제(春節, 중국 설) 연휴를 앞두고 지방정부마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해 경영난에 처한 우량 부동산 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수요 측면에서 주택 구매를 진작하기 위해 대도시도 주택 구매 규제 완화 대열에 합류한 것. 중국 부동산 재벌 헝다의 파산 사태로 충격받은 부동산 시장 자신감을 살리기 위한 조치다. 다만 경제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부양책 약발이 얼마나 갈지는 불확실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 의견이다.
국영·민간 우량 부동산 업체에 은행 대출 지원
1일 중국증권보에 따르면 최근 광시자치구 난닝, 충칭, 윈난성 쿤밍, 쓰촨성 청두 등 도시에서 부동산 건설 프로젝트 '화이트리스트'를 잇달아 발표했다.지난달 26일 열린 중국 주택건설부 회의에서 각 지방정부가 자금이 필요한 부동산 프로젝트 리스트를 1월 말까지 작성해 조속히 대출을 지원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3000억 달러(약 400조원)라는 천문학적 부채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헝다 그룹이 결국 홍콩 법원으로부터 파산 판결을 받으면서 가뜩이나 경영난으로 약화된 중국 부동산 기업의 자신감에 또다시 충격을 안겼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난닝시는 현지 금융기관에 부동산 프로젝트 107개를 담은 1차 화이트리스트를 발송했다. 이 중 광시 현지 국영 부동산기업인 베이부완 투자그룹의 '베이터우화위안' 프로젝트에는 이미 민생은행이 3억3000만 위안(약 612억원)의 개발 대출 자금을 집행했다. 중국 전국 최초로 부동산 화이트리스트에 따라 대출 지원이 이뤄진 것이다.
이 밖에 쿤밍시와 청두시도 각각 212개, 227개 부동산 프로젝트를 나열한 1차 화이트리스트를 각 금융기관에 발송한 상태다. 네이멍구 정부도 관련 부문에 1월 말까지 대출을 지원할 1차 부동산 사업 화이트리스트를, 2월 말까지 2차 부동산 사업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해 각 지방정부에 발송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다른 지방정부들도 향후 화이트리스트를 발표하면서 우량 부동산 프로젝트에 대출 지원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부동산 연구원인 지수연구원의 류수이 기업연구총감은 상하이증권보에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프로젝트를 현지 은행들이 각 프로젝트 상황과 대출 지원 기준에 따라 평가해, 자산·부채 수준이 합리적이고 대출 상환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프로젝트는 승인 심사 시간을 단축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대출을 이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콧대 높은' 대도시도 구매 제한령 완화 대열 합류
최근 주택 수요를 진작하기 위해 중국 대도시에서 잇달아 주택구매 제한령을 풀고 있다는 소식도 발표됐다. 부동산 침체에도 끄떡없었던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1선 도시 기존주택 집값이 최근 내림세로 돌아선 가운데서다. 중국 주택건설부가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각 지방정부에 부동산 규제정책에 대한 자주권을 부여해 지역 사정에 맞게 유연성 있게 부동산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자마자 대도시들이 수요 활성화에 나선 것이다.
상하이가 지난달 31일부터 상하이 후커우(戶口, 신분·거주지 증명을 위한 호적)가 없는 외지 출신 미혼자도 주택을 최대 1채 구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상하이는 지난 2012년부터 11년간 외지 출신의 미혼자는 아예 주택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날부터 상하이 현지에서 5년 이상 사회보험 혹은 개인소득세를 납부한 외지 출신 미혼자는 상하이 외곽순환도로 격인 와이환(外環) 밖의 민항구, 바오산구, 자딩구 등에서 주택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장쑤성 쑤저우도 지난달 30일부터 주택구매제한령을 전면 없앴고, 광둥성 성도 광저우도 지난달 27일부터 면적 120㎡ 이상의 시내 대형 아파트에 대한 구매 제한을 없앴다.
중국 차이신망에 따르면 현재 중국 10여개 도시에서 여전히 주택 구매제한령이 유지되고 있다. 여기엔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1선 도시 외에 톈진·항저우·청두·시안·창사·하이커우 등도 포함됐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연구소 장샤오돤 부원장은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춘제 전후로 각 도시들이 주택 수요를 진작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장 부원장은 "시장의 정책 적응기, 춘제 연휴(비수기), 인구 대이동 등 요소를 고려할 때 정책 효과는 춘제 연휴 이후에나 차츰 나타나면서 부동산 시장이 단기적으로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했다.
다만 그는 부동산 시장이 조정기를 겪고 있는 데다가, 경제 전망도 어두워서 주택 부양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며 부동산 경기가 호전되려면 안정적인 경제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짚었다.
주택 구매 규제 완화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는 의견도 있다. 황타오 광저우 중위안부동산 사업 총경리는 연합조보에 "광저우가 주택구매 규제를 완화한 지 닷새 동안 주택 구매 문의량은 많아졌지만 실제로 거래량은 큰 변화가 없었다"며 "현재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돈 있는 사람은 주택을 사지 않고, 주택을 사고 싶은 사람은 돈이 없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현재 주택구매 규제 완화 조치가 실수요자에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 주택구매 선불금 비율 인하 등의 조치로 실수요자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