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시즌이 다가오는 증권가 분위기가 심상찮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영업실적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주 요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본시장이 어려워진 탓이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 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충당금을 손실 처리하며 실적이 더 나빠지고 있다.
28일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초대형 IB 중 미래에셋증권과 키움증권은 지난해 말 3361억원 규모의 당기순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전망됐다. 증권사별로 살펴보면 자기자본 11조5000억원으로 국내 증권사 중 규모가 가장 큰 미래에셋증권은 1412억원, 개인투자자 점유율 1위인 키움증권은 1949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관련 손실을 인식하며 적자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회사들은 국내외 부동산 관련 평가손실을 반영하며 실적이 악화했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금융지주는 국내 부동산 PF 관련 약 1000억원, 해외부동산 관련 700억원 수준의 충당금 적립 및 평가손실 인식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PF 충당금 부담이 늘어난 상황 속에 대내외적 여건이 악화되며 초대형 IB의 영업실적은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들의 대손충당금은 3분기 누적 9455억원에 달한다. 전년동기 대비 55% 증가한 수준이다. 4분기 충당금을 더하면 연간 1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태영건설 사태에 따른 부동산 PF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증권사들이 충당금을 크게 늘린 것으로 해석된다. 당국이 증권사에 부실 PF에 대한 책임 강화를 주문하고 있어 충당금 적립과 손실처리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충당금과 관련해 증권가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임원회의를 통해 “본 PF 전환이 장기간 되지 않은 브리지론 등 사업성 없는 PF 사업장은 원칙적으로 금융회사가 지난해 말 결산 시 예상손실을 100% 인식해 충당금을 적립하고 매각·정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원장은 24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업계와 간담회에서도 “PF사업장에 대한 철저한 리스크 분석을 통해 부실사업장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해주기 바란다”며 “일부 회사의 리스크 관리 실패가 금융시장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면 해당 증권사와 경영진에 엄중하고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 원장 발언 이후 증권사들은 4분기 부동산 PF와 관련해 자산 재평가를 진행하고, 충당금 적립 규모를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대형사 중 태영건설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한투증권의 경우 4분기에만 충당금 1700억원을 적립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PF 문제로 실적에 발목이 잡혔지만 주력 사업도 좋지 않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주식거래대금 감소로 증권사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수료가 줄어들었다”며 “국내외 주식시장 및 자본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시가 평가로 인해 평가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