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는 뉴욕, 마이애미와 함께 미국 내 3대 관광도시로 꼽힌다. 네바다는 원래 캘리포니아로 가기 위한 길목에 불과한 '버려진 땅'이었다. 1930년대만 해도 인구가 10만명에도 못 미칠 정도로 먹고살 게 없는 가난한 동네였지만 주 전체에서 도박을 합법화하는 데 성공해 이제 300만명이 거주하는 서부 핵심 도시로 성장했다. 이런 라스베이거스가 매년 1월만 되면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행사로 떠들석하다. CES가 열리는 이맘때 미국 서부권으로 향하는 항공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은 물론 캐나다행 항공권도 부르는 게 값이고, 행사기간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비상근무 체제라니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CES는 전 세계의 기업들이 모여 신기술을 공개하고 기업의 비전을 소개하는 자리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SK, HD현대 등 한국 기업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해졌다. CTA(미국소비자기술협회)에 따르면 오는 9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CES 2024에는 총 13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가운데 한국인 참관자는 1만5000여 명으로 전망된다. 전체 3500개 참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600여 곳, 올해 CES 혁신상을 수상한 310개 기업 중 한국 국적 기업은 143개에 달한다. 국가 영토와 인구, 기업 수 대비 한국의 참여율이 미국을 제외한 국가 중 단연 최고로 꼽히는 이유다.
이 모든 키워드를 관통하는 주제는 'ALL ON(올 온)'이다. 이는 "기술을 사용해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업이 동참한다는 의미"라는 게 게리 샤피로 CTA 회장의 설명이다. 세상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양한 기술 혁신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믿음과 용기, 가능성을 행사장에서 직접 확인해 달라는 메시지다. 그래서 '올 온'의 핵심으로 '휴먼 시큐리티(인간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기업들이 공개한 수천 개의 포트폴리오 속에서도 공통된 주제는 휴먼 시큐리티다. AI가 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더라도 결국 기술은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것, 첨단 기술 속에 기업들이 녹인 핵심 메시지다.
휴먼 시큐리티는 누구나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깨끗한 공기와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 기술의 혜택을 평등하게 누릴 권리 등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를 '인권'이라고 부른다. 세계 곳곳에서 국지적인 전쟁이 확산되고, 자국 이기주의를 위해 기술 패권전쟁이 한창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 최대의 기술박람회로 꼽히는 CES가 인권을 외치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한국의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우리는 제국주의 식민지배, 전쟁, 독재 등 인권의 불모지에서 빠르게 벗어나 기술적 진보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한국의 기술이 전 세계에 휴먼 시큐리티의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약 2만명의 한국 기업인들이 이번 주 라스베이거스를 찾는다. CES 2024에 참석하는 한국 기업들이 모두 큰 성과를 이루고 안전하게 돌아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