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진일 한국물류사업협동조합 이사장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는?"

2024-01-0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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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일 한국물류사업협동조합 이사장
[김진일 한국물류사업협동조합 이사장]



 한강의 기적을 만든 우리의 제조업은 기로에 서있다.  눈부신 경제발전과 수출 대국을 이룩했으나 인건비 상승과 높은 부지 비용으로 우리 기업들은 발목이 잡혀있다. 한국에서 중간·가공재를 수입해 조립·생산만 하던 중국의 기술력이 급성장 하면서 우리 기업의 설땅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우리 제조업은 중국이나 동남아로 눈을 돌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보호주의 무역이 심화되고 우리가 수입에 의존하는 해외 주요 자원의 공급망까지도 위태롭다. 해법은 없을까? 아주경제가 연말에 2024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김진일 한국물류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는 물류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김 이사장은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물류 산업에 종사한 베테랑 기업인이다. 특히 그는 기후변화로 인해 10~15년후 예상되는 북극항로의 개설은 지리적으로 3면이 바다이고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대한민국에 제2의 도약을 위한 무한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대비해 정부가 유통물류산업 발전을 위한 담대한 비전 제시와 함께 철저한 준비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 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을 겪으며 세계 공급 시장이 위축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물류업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여러모로 좋지 않은 때이지만 국내 기업들이 잘 대응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해외 공급망을 둔 제조 기업 중 60%는 현재 수입 중인 원자재와 부품을 대체하는 방안을 이미 마련했거나 검토 중이다. 펜데믹과 전쟁은 세계를 긴장시키는 큰 사건이고 그로 인한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태세는 공급망 리스크가 장기화 될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제조 기업들은 해외 거래처 다변화 등 공급망 안정성 확보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는 교역의 루트 또한 다양화 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물류 기업들은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물류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가지 예로 최근에 또 한번 이슈가 되었던 요소수도 3년 전과 같은 대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고를 미리 확보하는 등 대비 중이다.
 
물류를 제조업을 이을 한국경제의 미래 먹거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제조업 육성과 수출 장려 정책으로 무역 규모 1조 달러와 국민소득 3.5만 달러에 이르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을 이루고 나니 인건비 상승과 높은 부지 비용의 문제 등으로 조금 더 고부가가치 산업인 첨단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해외로 빠져나간 제조업을 대체할만한 먹거리 산업은 물류가 적임자이다. 한국의 물류 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에 있어 해운이 5위, 항공이 4위, 조선산업은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약 300만명이 종사하는 큰 분야이다.
 
 물류 산업이라 하면 그저 운송과 보관만을 다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물류는 재화의 공급으로부터 조달·생산되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가공, 조립, 분류, 포장, 상표부착, 판매, 정보통신 등을 망라한다. 이것이 물류를 국가 산업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다. 한 마디로 풀(pool)이 큰 사업인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동북아시아 중심국가로서 한·중·일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식량, 자원 등의 유통물류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전북 새만금 지역은 동북아 중심 유통물류 시스템 구축의 최적의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보통 소고기나 석유 같은 수입품은 가져오는데 두 달 정도 걸린다. 그런데 한·중·일이 공동수입망을 구축하여 각자의 나라로 가져간다면 일주일만에 유통 가능하다. 새만금이 그 중심이 되어 동북아시아 유통 물류의 중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용 절감도 클 것이고 세계적인 유통 대기업들의 진출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곧 북극항로가 열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에 대한 한국 물류업계의 전망은?
 
 북극 해운항로의 해빙은 십수년 전부터 기상과학자들이 예측해온 사실이다. 아직은 쇄빙선을 앞세워 항로 안전성 및 상업성을 점검하는 정도지만 선두가 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2035년 전후로 북극 해운항로에 상업선박운항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항로를 3분의 1 가량 단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아시아권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가려면 40일 가량이 걸리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25일 만에 도착한다. 미국 뉴욕항의 경우에도 알래스카 북쪽을 지나는 것이 파나마 운하를 지나는 기존 경로보다 5천km 단축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부산(광양)항만을 주력으로 삼아 북극항로를 적극 활용하는 세계 물류 허브로 도약해야 한다.
 
한국 물류 산업이 개선해야 할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은 물류 산업에 유리한 환경을 구비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이고 아시아 대륙 진출의 출발점이지 않는가. 글로벌 물류시장 또한 매년 6% 성장, 2030년 16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 물류산업이 융성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나눠진 행정 시스템에 있다. 현재 항공·철도·도로 물류는 국토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국토교통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물류 부처로 알려진 국토교통부이지만, 90% 가량은 주택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물류는 뒷전이다. 해양수산부도 수산 정책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이렇듯 현재 물류 산업은 여러 부처로 쪼개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조차 관심을 못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천재일우의 유리한 글로벌 환경 조성에도 불구하고 국가차원의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글로벌 성장가도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산업의 영세성, 과다 경쟁, 3자 물류정책 역행, 인식 부족 등의 현안도 있다.
 
한국 물류 산업 선진화를 위한 필수 요건은?
 
 앞 질문과 이어지는데, 다수 부처에 찢어져 있는 물류 기능들을 모아서 하나의 전문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른바 ‘물류산업부’를 신설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에 있는 물류 분야를 통합하거나 물류산업비서관을 신설하는 등 물류가 단일 국가 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 네덜란드나 싱가포르는 물류산업을 국가 성장 전략의 우선순위로 격상하여 세계적 물류 강국이 되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반도체 생산 안정화를 위해 미국이 한국, 일본 대만과 ‘칩4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에서 중국 사업 비중이 높은 대한민국의 전략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산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미-중 틈바구니에서 자칫 지금의 위상을 상실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이기도 하다. 전략적 균형 외교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인 ‘칩4 동맹’ 가입은 불가피하다. 동맹을 통해 첨단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중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벌려놔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과 대척점에 있으면서 우리와 밀접하게 묶여있는 중국과의 마찰 또한 최소화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중국과의 반도체 공급 협력을 위해 현재 중국에서 가동 중인 반도체 공장을 보호하고 현재 공급중인 한-중 공급망이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제 2의 사드 보복과 같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요소수, 희토류 등에 대한 수입선 다변화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신냉전과 자원을 무기화하는 자원민족주의로 세계 경제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 우리의 대응 전략은?
 
 코로나 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을 거치면서 지금 세계는 경제와 안보가 양극이 있는 하나의 축에서 움직이는 신냉전의 기류가 두드러지고 있다. 에너지나 광물을 가진 국가들은 이를 무기화 하는 ‘자원민족주의’가 급부상하고 있고, 상품(서비스)와 기술, 자원을 중심으로 친미 동맹과 반미 동맹으로 세계가 양분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장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국가 중 하나가 바로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인데,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미국 중심의 공급망 동맹 움직임에서 이탈하지 않으면서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민하고 위험성이 높은 시기인 만큼, 우리나라는 자원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는 루트를 독자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친미 동맹과 반미 동맹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친미 동맹은 상품과 기술, 그리고 시장을 배경으로 리쇼어링(비용 등을 이유로 해외에 나간 자국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는 것)·니어쇼어링(높은 인건비 등의 문제로 리쇼어링이 어려울 경우 인접 국가로 생산 시설을 이동시키는 것)·프렌드쇼어링(동맹ㆍ우방국끼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을 통해 공급망과 수요망을 연결하면서 반대 진영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자체 동맹으로 독자적인 원·부자재 공급망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반미 동맹은 원유나 가스 같은 에너지와 희귀금속을 무기화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사수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시장 권역을 만들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적인 공급망도,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동맹국들과 협력하여 독자적 공급망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이사장님께서는 제 3의 거점국가를 포함한 ‘한미 글로벌 제조 공급망 동맹’의 구축을 제안하셨는데, 아이디어에 대한 간단한 개요와 이를 제안하는 이유는?
 
 미국은 동맹·동반국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통해 세계 위기에도 위협받지 않는 안전한 공급망을 설계 중이다.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 내 동맹 확대를 위해 ‘IPEF’라는 인도·태평양 경제협력 프레임워크를 강력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안 그래도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중국 공장이 셧다운 되거나 중국 정부가 수출 규제를 감행하면 국내 업계는 중국이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서 고안한 것이 ‘한미 글로벌 제조 공급망 동맹’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제 3국가와도 협력하여 각국의 장점을 모아 안전한 공급망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통적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적절한 타이밍이다.
 
 이 제안의 큰 개요는 미국의 첨단 기술, 한국의 제조 기술, 제 3국가의 노동력과 부지를 활용한 독자적이고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의 탄생이다.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우리나라의 국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편으로 미국의 거대한 소비 시장, 첨단 기술, 금융과 한국의 제조 기술 및 글로벌 제조 경험을 효율적으로 결합시켜 제 3의 주요 거점 국가에 제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은 첨단 기술을 제공하며 확고한 우방국을 확보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제3국가에 수출산업 전지기지를 확보함과 동시에 미국의 첨단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제3국가는 대규모 수출 산업 육성으로 민생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7-80년 전 우리나라도 이렇게 풍부한 자원과 저렴한 노동력을 땔감 삼아 본격적인 경제 성장에 불을 지폈으며 지금의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그렇고, 노동집약적 성장 모델이라면 다들 한번씩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제3국가가 협력하여 한·미의 기술로 운영되는 제3국가 국제자유 산업 제조단지는 한국 경제개발 모델을 모범 삼아 개발도상국 수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한·미·제3국 간 글로벌 공급망은 미국, 한국, 제 3국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트리플 윈(Triple Win)인 셈이다.
 
제 3의 주요 거점 국가로 적합한 후보 국가가 있다면?
 
 새로운 공급망이 들어서기 위한 조건은 간단하다,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 자연스레 ‘제3세계’로 눈을 돌렸고,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동쪽에 위치한 탄자니아가 가장 눈에 띄였다. 탄자니아는 자원과 노동력 말고도 여러 이점이 있다. 시장 접근성이나 대외 개방성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프리카에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한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동아프리카 공동체(EAC). 동남아프리카 공동시장(COMESA) 등의 회원국으로 대륙 내 영향력이 크고 경제성장률도 4.56%(2022)로 미래가 밝은 나라로 평가된다. 중국의 영향력이 높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성공적인 제조 국가 육성을 통해 역내 자유시장경제 가치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미 글로벌 제조 공급망 동맹’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일단, 한·미 전략 동맹의 포괄적 확대를 위한 구체적 실현 방안 중 경제 분야의 핵심 아젠다로 ‘한미 글로벌 제조 공급망 동맹’을 미국 측에 제안한다, 본격적으로 양국 간에 이 사안이 논의된다면 양국 민관이 공동 참가하는 추진 협의체를 구성하여 세부 실행 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미국 측에서는 국무부, 상무부, USTR(미국 통상 대표부) 등, 한국 측에서는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참석할 수 있겠다. 각계 인사들이 모여 제조 공급망 동맹 거점 제 3국 선정과 제조업 육성을 위한 협의를 추진한다. 그리고 한국, 미국, 제 3국가 간의 역할 분담과 육성 체계를 구체적으로 수립하면 공식적인 국가 사업으로 거듭난다. 미국·유럽·아시아 시장을 대상으로 양자 혹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판로를 지원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오늘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을 요약하자면, 물류 산업이 하나의 독립된 국가 산업으로 성장했으면 좋겠고, 한미 글로벌 제조 공급망 동맹을 통해 우리나라가 글로벌 공급망 3국의 균형을 잡으며 칼바람 같은 신냉전의 바람 속에서도 견고한 시장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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