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초 공언한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실거주 폐지)' 개정안이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당장 실거주 의무 규제를 적용받는 전국 4만7000여 가구가 혼란에 빠지게 됐다. 내년으로 넘어가면 총선 정국이 본격화돼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대책을 믿고 이미 분양을 받은 예비 입주자들만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국토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주택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안건을 보류했다.
이번 합의 불발로 연내 실거주 의무 폐지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올해 마지막 국회 본회의는 28일로 예정돼 있다. 국토위는 이달 안으로 법안소위를 한 차례 더 열어 실거주 의무 폐지를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법안소위 개최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고 현재 법안 논의 역시 답보 상태여서 극적 타결을 기대하긴 힘들다는 평가다.
특히 내년에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가 불발되면 법안 논의는 내년 총선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합의가 불발되면서 시장의 큰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세를 끼고 잔금을 치르려던 자금 계획이 틀어지면서 비용 부담이 대폭 늘어날 우려가 있다. 기존에 살던 전셋집을 재계약한 사람은 전세 계약을 중도 해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입주할 계획은 없지만 미리 집을 장만해두려고 청약을 신청했던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선 "차라리 과태료를 내고서라도 집을 팔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거주 의무는 지난 2021년 2월 수도권에 처음 적용됐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받은 뒤, 프리미엄(피)을 붙여 시세 차익을 남기는 행위와 갭투자 등을 막아 집값 급등을 막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시장 왜곡 등의 이유와 최근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인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정부는 지난 1월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발표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72개 단지, 4만7595가구에 달한다. 이 중 1만5000여 가구가 내년에 입주할 예정이다. 실거주 의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고, 당첨된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분양가 수준으로 넘겨야 한다.
전문가들은 거래절벽은 물론 전매제한 완화로 이미 주택을 마련한 수요자들이 있어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며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정부 발표를 믿고 의사 결정을 내린 사람들, 특히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시행령 등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폐지가 어렵다면 실거주 의무를 바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전체 보유 기간 중에서 실거주 의무를 채우는 등의 대안을 여야가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월세 시장 공급 감소로 임대차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은 "실거주 의무가 유지되면서 서울 내 대형 단지를 중심으로 전세 물량들이 사라질 수 있다"며 "내년 입주 물량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임대차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