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들이 자금난을 겪으며 서울 노른자위 알짜 부지나 과거 인기 있었던 대형 개발부지 등이 공매로 속속 나오고 있다. 이후에도 수차례 유찰돼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얼어붙으며 시행사가 자금조달에 실패, 사업이 좌초되며 대주단이 원리금 일부라도 돌려받으려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이다.
7일 한국자산관리공사 자산처분시스템(온비드)에 따르면 면적 2496.5㎡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732-20 외 5필지 대지는 최저입찰가액 1150억5200만원에 오는 11일 1회차 입찰을 앞두고 있다. 주상복합단지 조성 사업이 계획됐던 곳인데, 고금리와 건설비용 증가 등 사업성 악화로 좌초되며 소유주(시행자)가 부지를 처분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차례 유찰되며 가격이 반토막 아래로 깎여도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로 서울에서도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는 서초구 서초동 1310-5의 대지면적 5500.2㎡ 규모 부지도 '영동플라자 개발사업' 자금조달에 실패하며 공매 물건으로 등장했다.
당초 시행사 삼양엘앤디가 기존 영동플라자 쇼핑몰 부지에 지하 3층~지상 4층(연면적 2만6283) 상가를 신축하려고 했던 곳이다. 지난 8월 브릿지론 연장 만기일이 도래할 때까지 만기 연장 또는 본PF 전환에 실패하고 시행사의 이자 채무불이행까지 지속되며 기한이익상실(EOD) 선언 후 공매로 넘겨졌다. 지난달까지 총 8회에 걸쳐 입찰을 진행했으나 유찰되며 최저입찰가가 5300억원에서 2535억원까지 떨어졌다. 최근 대주단의 요구로 다시 공매를 시작하며 9회차 입찰을 앞두고 있다.
낙찰자를 끝내 찾지 못하면 대주단의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다. 만약 낙찰된다 하더라도 이미 최저입찰가가 크게 떨어진 상태라 대주단이 전부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수탁자인 우리자산신탁 측은 "대주들이 계속 상환을 못 받다보니 공매를 더 진행해달라고 추가 요청이 왔다. 하지만 대주들도 상환받으려면 금액이 너무 낮아지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좋은 입지조건이고 가격이 떨어진 것은 맞지만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부동산 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 등으로 인해 매수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해당 부지 ㎡당 최저입찰가도 4282만원으로, 인근 서초구 서초동 1660-19 부지가 최근 ㎡당 1850만원에 낙찰된 것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 밖에도 수도권 곳곳의 주요 사업부지들이 자금난을 못 버티고 공매에 나오는 사례는 많다. 가산디지털단지 패션 아울렛이었다가 지난 6월 30일 폐업한 '가산W몰'도 최근 공매에 부쳐졌다. 시행사 예인개발이 지식산업센터를 짓기 위해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으나, 브릿지론 만기 연장에 실패하며 대주단으로부터 EOD 통보를 받았다. 최저입찰가는 감정가(2602억7800만원)의 85% 수준인 2235억7800만원으로 지난 6일 입찰이 진행됐지만 유찰됐다.
인천북항항만 배후단지에 있는 물류센터 부지(인천 서구 원창동 394-1)도 각각 8516㎡, 3만4066㎡ 규모 토지와 건물 공매에서 네 차례 유찰됐다. 1회차 때 1276억원이던 최저입찰가는 현재 837억원으로 내려갔다. 물류업체 어반콜드체인이 시행을 맡은 곳으로, 지하 1층~지상 8층 규의 저온물류센터로 준공돼 올 1월 사용승인이 났다. 이곳도 저온물류센터 공급과잉으로 낙찰자를 찾기 어려운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시장 위축과 고금리 지속으로 내년까지도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대출연장 시 금융권의 요구조건도 더욱 까다로운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대주단으로부터 수천억원을 빌려 부지를 매입했던 시행사들이 결국 대출연장에 실패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내년에 브릿지론 만기가 다가오는 사업장도 많아 쓰러지는 시행사들이 한 두 곳이 아닐 것"이라며 "만약 금리 하락으로 금융비용이 줄어들면 사업성이 조금 개선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 자금조달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 PF 부실화로 건설시장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며 "브릿지론 대부분이 2024년 만기 도래 예정으로 향후 1년간 PF 손실 부담이 과중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건설시장 회복세 보이기 위해서는 부동산 PF 등 자금시장 불안 해소가 전제돼야 하는데, 부정적 환경요인이 단기간 해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