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윤 정부는 ‘9·19 합의’의 핵심 내용을 효력 정지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9·19 군사합의'는 지난 2018년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다. ‘9·19 합의는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남북한 접경지에 비행금지구역, 포병 사격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 훈련 금지 구역, 완충 수역 등을 설정하고 있다. 남북한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우리 정부의 효력 정치 조치에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9⸱19 합의의 전면 파기로 맞섰다.
일명 첩보위성이라고 하는 정찰위성은 현대사회의 필수적인 존재다. 군사분야 정보뿐만 아니라 민간분야에서도 수색 및 구조, 자연재해 발생에 대처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고해상도 이미지를 통해 잠재적인 테러 활동, 불법 무기 밀매 및 기타 보안 위협도 식별할 수 있다. 한마디로 국가안보의 잠재적인 위협에 대응하는 수단이다. 세계의 유수 국가들은 인공위성의 개발을 원하고 있다. 한국은 ‘누리호’를 통해 인공위성 궤도 안착에 성공한 바 있으며, 북한도 꾸준히 위성 보유를 추구해왔다. 문제는 남북한과 같은 적대적 상황에서는 군사 분야의 정찰위성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위성으로 자체 군사시설에 대한 정밀 감시를 받아온 북한으로선 대응적 위성 정찰체계의 구축이 절실한 터였다. 실시간에 가까운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앞으로도 5~6대의 위성이 더 있어야 함을 감안하면, 북한은 위성을 계속 발사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지난 2일 미국 반덴버그 우주 군기지에서 발사한 군사정찰위성 외에도 2025년까지 정찰위성 5대로 전력화하고, 수십 기의 소형 위성까지 쏘아 올릴 계획이다. 지난 11월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는 미국의 조기경보위성을 통한 24시간 북한 전역을 감시할 수 있는 정보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 정부가 남북한 사이의 ‘9·19 합의’를 먼저 효력 정지시킨 것이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9⸱19 합의’는 별개다. 남북한 사이의 우발적 충돌을 염려해 만들어놓은 합의를 파기함으로써 오히려 우발적 충돌의 위협을 고스란히 안게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아이러니한 조치다. 북한이 취한 행동에 대해 단순 보복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북한이 애초부터 9⸱19 합의를 지키지 않았기에 합의 자체가 무력하다는 점이다. 국방부가 펴낸 2022 국방백서에는 해안포 사격, 총격, 무인기 영공 침범 등 북한이 위반한 중대한 사례는 17건에 이른다고 되어 있다. 해안포 개방과 같은 비교적 경미한 위반 사례까지 따지면 9⸱19 합의 이후 3000번 이상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합의를 유지해봤자 전략적으로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찰위성 발사에 맞추어 기다렸다는 듯 선제적으로 효력 정지를 취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그런 조치를 먼저 취함으로써 북한의 위반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비난이나 재발 방지를 일체 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조치였을까? 지난 5년 동안 북한이 9⸱19 합의를 3천 번 이상 어겼다고 하나, 북한의 이와 같은 위반은 한미연합훈련과 같은 합동군사연습과도 연관이 있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때마다 대거 미사일을 쏘아대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그와 같은 연습을 치명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600여 차례, 이 중 250여 차례는 ‘대북 선제공격을 노렸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위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9⸱19 합의의 파기는 남북한 서로에게 우발적 충돌의 위험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남북 관계의 패착이다. 위험지역의 군사적 활동에 대해 이제 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남북한은 군사합의 이전 단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높은 위협 수준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합의 이전이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조차 없는 위험한 관계가 된 것이다. 북한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고 했다. “합의에 따라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를 즉시 회복한다”고 밝혔다. 긴장 수준은 현격히 높아졌으며, 만약 서로 충돌이라도 하게 되면 상상도 하지 못하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윤 정부는 철저한 보복을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에 함께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더 큰 문제는 지금 우리에겐 적대적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아무런 출구도 없다는 것이다. 안전장치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역은 서해 해상이다. 이전까지는 이 지역을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훈련이나 무장 진입을 못하도록 하는 평화수역으로 설정했으나, 이제는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국민을 어떻게 안심시킬 것인가?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는 북한에 대해 압도적 군사력으로 맞서겠다는 말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강경하면서도 최대의 압박을 가하는 미국의 대북정책을 따르고만 있는 것이 능사일까. 생각해 보자.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온다고 우리의 안보가 더 확실하게 보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한미일 동맹을 강화한다고 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더 강하게 정착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일반 국민이 느끼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다. 평화는 평화적인 조치로써 지켜내야 한다. 평화라는 국익을 우리에게 맞는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자주국방이다. 남북한 사이에 드리워진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남북이 갈등 요소를 차단할 수 있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병행 추진해 줄 것을 촉구한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