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키신저가 남긴 '현상 유지' 외교적 유산

2023-12-0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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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학부  교수]


100세까지 장수하다 지난주 타계한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20대 시절 쓴 하버드대학 박사 논문을 보면 그가 한평생 추구한 바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현상 유지(status quo)이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약 100년 동안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유럽 상황을 설명하며 그는 영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두 강국이 유지한 힘의 균형을 이유로 들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부상을 억제하는 가운데 양국이 적절히 현상을 유지해서 큰 전쟁을 방지했다는 얘기다. 

그가 1971년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해 핑퐁외교로 미·중 간 데탕트를 이뤄내고 결국 1979년 미·중 수교까지 이끌어 세계사에 큰 변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보면 좀 의외적인 주장이다. 현상 유지를 추구하던 그가 어떻게 그러한 획기적인 변화를 이뤄냈을까? 자세히 살펴보면 설명이 가능하다. 미국이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통해 얻어낸 것은 결국은 중·소 간 반목이고 그를 통해 전체적으로 미국과 소련 간 대립 구도는 그대로 현상 유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중국과 소련 간 밀착 관계가 있었다면 힘의 균형은 당연히 그쪽으로 넘어가 미국은 수세에 몰렸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키신저는 힘을 통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설계하고 이를 성공시킨 공로를 인정받는다. 역설적으로 그가 추구한 미·중 데탕트는 결국 냉전 시대를 끝냈지만 동시에 중국의 부상을 야기해 새로운 대립 구도를 만들어냈다. 중국과 러시아가 다시 밀착하여 서방에 더 큰 도전으로 다가오는 지금 상황에서 국제 정세의 현상 유지는 갈수록 어려워 보인다. 이 시점에서 키신저가 어떤 처방을 내릴까? 현상 유지를 위한 또 다른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할까?

그 대답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가 지켰던 현실주의적 국제 관계 철학, 즉 힘의 균형을 통한 현상 유지는 한국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한 점이다. 핵 확산 방지라는 목표 아래 포드 행정부 키신저 국무부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핵 재처리 시설과 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무산시켰다. 한국 정부는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다고 강변했지만 키신저가 서명한 당시 문서는 “정교한 무기 설계”에 이용될 수 있다고 묵살했다.

힘의 위력을 믿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서 그는 목표를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박 대통령의 의지를 꺾기 위해 그는 프랑스뿐 아니라 당시 한국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던 캐나다에까지 압력을 넣어 결국 뜻을 관철한다. 나중에는 한국에 '결정적 한 방(knock-out blow)'을 날렸다고 자평했다. 당시 그가 국무장관이 아니었다면 과연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날 한반도 안보 상황에 그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현상 유지를 위한 힘의 균형을 위해 키신저가 자기 의지를 밀어붙인 사태는 그 밖에도 많다. 칠레에 민주적 선거를 통해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 정부는 군사 혁명을 통해 이를 무너뜨리고 우파 독재정권을 세운다. 공산주의의 동남아시아 팽창을 막기 위한 베트남 전쟁에서는 캄보디아, 라오스에 2차 대전 당시 일본과 독일에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해 이 지역을 폐허로 만들었고 킬링필드 사태까지 야기했다. 이 모든 상황의 배경에는 키신저가 있었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을 통해 베트남 전쟁은 끝났지만 이 지역에는 아직도 터지지 않은 그때의 폭발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특히 어린아이들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많다.

파리 휴전 협정을 주도한 공로로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지만 순탄한 수상은 아니었다. 전쟁을 확산하고 엄청난 인명을 희생시킨 이유로 당시 일부 노벨 평화상 심사위원은 이를 반대해 사표를 제출해서 영광스럽지 못한 수상이 되었다. 그와 함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레둑토 북베트남 대표는 아직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그 밖에도 미국 이익을 위해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인권 유린과 대량 살상을 묵과하고 방조한 이유로 일부는 그를 ‘전쟁 범죄자’라고 부른다. 파키스탄의 벵갈 탄압이나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탄압 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가 보는 키신저의 모습은 극에서 극으로 이어진다. 데탕트로 평화와 안보를 가져다준 출중한 외교관이기도 하고 미국 국익을 위해서는 타국의 피해와 고통을 나 몰라라 했던 냉혈한 현실주의자다. 그러나 과연 키신저의 이러한 전력을 모두 한 개인의 공과로 돌려야 할까? 어찌 보면 그는 초강대국 미국이 전 세계에서 패권을 위해 취해온 근본적인 외교 정책의 산물일 수 있다. 겉으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 세우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곧잘 이에 반하는 이율배반적이고 때로는 위선적인 미국이라는 구조가 만들어 낸 단순한 아바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인정할 점은 있다. 미국 패권의 현상 유지를 위해 평생을 매진하는 가운데 이를 위해 끊임 없이 공부하고 연구했던 점이다. 그는 90세가 넘어 인공지능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 2년 전 98세에 ‘AI의 시대’라는 책을발간한다. 여기서 그는 AI가 인류에게 미칠 혜택과 아울러 폐해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그에게 AI는 이 시대의 현상 유지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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