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상계는 민법상 근거가 있지만, 그러한 근거 법률 없이 대법원 판례 법리에 의해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이 있다. ‘책임제한’이다.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이 ‘손해분담의 공평’이므로 그에 관한 사정을 고려하여 가해자의 배상책임을 손해의 일정한 비율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법원이 책임제한의 비율을 정하는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사안에서 동일하게 책임제한을 하거나, 동일한 사안에서 다르게 책임제한을 하는 등 도리어 형평에 반하는 판결이 자주 발견된다.
최근에 판결이 선고된 옵티머스 펀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의 책임제한을 예로 들어 본다. 옵티머스 펀드 투자자가 제기한 두 개의 소송을 함께 맡은 재판부는 같은 날 판결을 선고하면서 두 사건 모두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30%로 제한하였다. 그런데 두 사건은 사실관계가 전혀 다르다.
반면 C투자자의 경우, D증권사는 옵티머스 펀드의 실체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아님에도 허위의 내용으로 설명했다. 심지어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제공한 투자제안서에도 없는 내용을 D증권사가 임의로 기재하여 C에게 허위설명했다. C가 투자를 했지만 직후 펀드 환매가 중단됐고 결국 C는 투자금 거의 모두를 잃었다. C와 D증권사 간의 펀드 매매계약도 취소됐다. 이 사안의 경우 D증권사가 C투자자로 하여금 옵티머스 펀드에 관해 잘못된 인식을 갖도록 착오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두 사건을 비교하면 D증권사의 잘못이 C증권사의 잘못보다 크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래서 C증권사의 매매계약은 취소되지 않았지만 D증권사의 매매계약은 취소가 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같은 재판부가 같은 날 판결을 선고하면서 C증권사와 D증권사의 책임을 동일하게 손해의 30%만 배상하도록 책임제한을 했다. D증권사의 책임을 위와 같이 제한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것은 C투자자가 옵티머스 펀드에 내재된 위험을 스스로 파악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옵티머스 펀드는 처음부터 그 펀드의 실체가 없어 C의 손해는 펀드에 내재된 위험의 실현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C투자자는 과연 법원의 판결을 수긍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A투자자와는 전혀 다른 사정임에도 배상비율을 동일하게 정한 것을 수긍할 순 없을 것이다.
같은 재판부가 같은 날 선고한 판결에서도 이렇게 책임제한 비율이 불합리하게 정해진다. 그럼 재판부가 다르다면 책임제한이 서로 형평에 맞지 않게 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위와 같은 책임제한의 불합리를 상급심에서라도 바로잡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제한 사유에 관한 사실인정이나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을 1, 2심 재판부의 전권사항으로 본다. 책임제한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법원에 상고할 사유로 삼지 못한다. 결국 불합리한 책임제한의 문제는 대법원 판단을 통해서 바로잡기도 어렵다. 불법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합리적인 이유도 제시 받지 못한 채 손해의 일부만 배상을 받는 부정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과거 형사재판에서도 형이 불균형해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법원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이 반영된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해 2007년 양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후 양형위원회는 범죄의 유형별로 상세한 기준을 제시했다. 그렇게 양형기준이 적용됨에 따라 형사재판의 양형 부당 문제는 상당부분 줄었다.
민사 손해배상 재판에서도 그러한 방법으로 책임제한의 기준을 유형별로 제시한다면 들쭉날쭉한 책임제한 비율 불균형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손해배상의 책임제한에서도 그 기준을 만들어서 민사 정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건전한 상식이 반영된 공정하고 객관적인 책임제한’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