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여기는 너무 오랫동안 퇴보했죠.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곳인 만큼 얼른 바뀌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곳에서 60년 넘게 살았는데 허물고 새로 짓는 모습을 죽기 전에 보고 싶네요."(세운지구 인근 주민 이모씨·83)
2일 찾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 일대는 1968년부터 5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상가들이 남아 있는 가운데 이미 상가가 철거된 부지 곳곳에서는 대규모 재개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노후 상가들 사이로 공사 현장 타워크레인과 자재를 옮기는 화물트럭 등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세운청계상가 옆 세운4구역에 들어선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1·2단지' 앞에서는 공인중개사무소 두 곳이 간판을 내걸거나 내부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등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현재 아파트 입주가 80% 정도 진행된 상태다.
건너편에는 6-3구역 대형 오피스 을지트윈타워(2019년 준공)를 중심으로 총 614가구 규모 '세운푸르지오헤리시티' 입주가 진행 중이다. 공동주택 564가구가 조성될 '세운푸르지오더보타닉(세운6-3-3구역)'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들 단지 인근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세운지구 중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게 아직도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만 개발 예정된 업무·주거시설 모두 다 자리 잡고 나면 인근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될 것"이라며 "아직은 많이 낙후돼 있지만 저도 그렇고 이곳 입주민들 모두 변화할 미래 모습을 기대하며 들어왔다"고 말했다.
주민 A씨는 "여기가 업무지역이고 주거시설은 워낙 부족하다 보니 밤만 되면 텅 비어서 유령도시 같았다"며 "얼른 1만가구 가까이 들어오고 건물들도 완공돼서 북적북적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운지구에서 65년째 살고 있다는 이모씨는 "오세훈 시장이 처음 세운지구 개발을 들고 나왔을 때 제대로 진행됐다면 좋았을 텐데 10년 넘게 허송세월한 만큼 이번엔 제대로 개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60~1970년대 조성된 종묘~퇴계로 일대 세운지구는 오세훈 시장이 그동안 개발 추진 의사를 강력히 밝혔던 곳이다. 부지 면적만 44만㎡에 달해 사대문 안에서 개발되는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로 꼽힌다. 서울시는 세운지구 일대를 용적률 1500%, 최고 높이 200m 내외로 고밀·복합 개발해 연면적 100만㎡ 이상에 업무·상업 인프라와 1만가구 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전자제품 상가를 운영하는 정모씨는 "50년 넘게 경제 발전에 기여한 역사가 있는 곳인데 상인들이 갈데없이 쫓겨나 공중분해되고 있다. 여기서 나가 인근에 새로 자리 잡기엔 땅값이 너무 올라 들어가지도 못한다"며 "기존 상권을 보존하면서 환경을 개선하는 게 맞지 않으냐"고 토로했다.
새로 들어선 주상복합 단지들이 상가 분양에 난항을 겪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요소다. 이날 찾은 신축 단지 한 곳은 1층 상가가 편의점 한 곳 빼고 모두 비어 있었다. 인근 공인중개사 김모씨는 "사실 상업시설 분양은 고전하고 있다. 최근 상가 분양가를 최대 50%까지 대폭 할인하고 있다"며 "일단 가격이 너무 비싸서 고금리 시기에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못 들어오고 있다. 일대에 주거 수요를 받쳐줄 만한 기반 상업시설도 부족하다 보니 들어오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