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을 크게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힘에 따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추진하는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 설립에 속도가 붙게 됐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과 포스텍(포항공대)도 의사과학자 양성을 강조해 추가로 과기의전원 설립에 뛰어들 가능성이 점쳐진다.
18일 과학계에 따르면 KAIST는 지난달 의과학대학원을 운영하며 확보한 경험을 바탕으로 과기의전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의대 졸업 후 의사 면허를 보유한 인재가 바이오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진학하는 의과학대학원과 달리 과기의전원은 연구에 뜻이 있는 인재를 교육해 의사 면허를 주고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는 게 목표다.
이광형 KAIST 총장도 취임하면서 과기의전원 설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 대유행) 등으로 바이오생명과학 연구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이라며 "KAIST가 의학과 인공지능(AI) 등 이공계 융합 연구를 위한 과기의전원을 설립해 국가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KAIST가 계획하는 과기의전원은 일반 대학교 졸업자(학사)를 대상으로 4년간 의학 과정을 교육해 의사 자격을 부여하고, 이후 3~4년간 공학박사(PhD) 과정을 교육하는 구조다. 실험적인 교육 커리큘럼인 만큼 선발 인원은 매년 50명 정도를 목표로 한다. 1000명 이상으로 알려진 의대 증원 규모에 비하면 적은 수인 만큼 과학계에선 KAIST가 정원을 할당받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KAIST 행보는 다른 3대 과기원과 포스텍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UNIST는 지난 7월 울산대 의대와 함께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했고, 포스텍은 2026년까지 의과학대학원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이 의과학대학원을 넘어 과기의전원 설립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쳐지는 이유다.
의사과학자는 줄기세포치료제·인공장기·유전자검사·면역항암제 등 고부가가치 바이오 연구에 특화돼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릴 핵심 인재로 꼽힌다. 실제 최근 25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37%, 세계적인 제약사의 대표 과학책임자 70%가 의사과학자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행을 끝내는 데 공헌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자에게 돌아갔다.
미국에선 의과대학 졸업생 4만5000여명 중 3.7%(약 1700명)가 의사과학자 길을 걷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의대 정원 3058명의 1% 미만인 30명가량만 의사과학자가 된다. 의학계에선 과기의전원 설립과 함께 의사과학자가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