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의 경제 산업' 반도체에 10년간 겨우 5% 증설?
새는 모이에 목숨 걸다 잡혀 죽고 사람은 공돈에 목숨 걸다 죽는다. 한국은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의 덫에 걸렸다. 한국은 중국에서 공장 증설에 발목 잡혔다. 첨단기술에 있어 미국이나 중국이나 차이가 없다.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꾀어 놓고 공장 지을 땅을 파기 시작하자 미국이 보조금 지급 조건을 3가지 추가했다. 주요 내용은 1) 정보접근권 2) 이익 공유 문제 3) 중국 증산 제한이다.
반도체는 생산량이 두 배 되면 원가가 33% 떨어지는 전형적인 학습곡선이 적용되는 산업이다. 기술은 기본이고 양산이 돈이다. 그런데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한국 기업에 대해 증설을 10년에 5%로 묶었다. 이건 미국에만 공장 짓고 중국에서는 공장 빼라는 말이다.
한국은 미국의 5㎚ 이하 첨단 반도체 내재화에 적극 동참하고, 공장 짓고, 칩4(chip4)동맹,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1번으로 가입했지만 결과는 씁쓸하다. 룰은 힘 있는 자가 만드는 것이지 약자를 배려하는 자선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중 기술전쟁에서 반도체 보조금은 국방비다?
3교대 24시간 365일 공장을 돌려야 하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반도체 공장은 1인당 소득 2만 달러 넘어가면 돌리기 힘들다. 그래서 1980년대에 이미 미국 반도체 공장은 일본으로 갔고 다시 1990년대에 한국으로 왔고 2010년대에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같은 1인당 소득 7만8000달러대인 나라에서 3교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1만3000달러대인 중국은 24시간은 당연히 일하는 것이다.
반도체 시장은 지금 미국(19%)이 아니라 아시아(63%)에 있다. 반도체 기술은 미국 기술이지만 생산은 한국과 대만이 하고 소비는 중국이 한다.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기고 수요는 공급을 창출한다. 필요는 생산의 어머니다. 이런 추세라면 10년 뒤면 중국의 반도체 생산이 미국을 추월한다. 이런 미국의 절박감이 후진국에 보조금 퍼주고, 무리한 규제 조치를 마구 퍼붓는 진짜 이유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 시장에 대한 인식은 중국의 무지막지한 추격과 아시아의 부상은 정부 보조금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이해는 되지만 후진국이 선진국을 추격할 때 보조금 주는 것은 교과서인데 이를 선진국 미국이 후진국을 따라 하고 있다. 미국이 후진국을 통상 문제에서 규제하고 보복할 때 정부 보조금으로 시비를 건다. 보조금은 시장경제와 공정경쟁을 해하는 악이고 이는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미국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에서 미국이 생산 약자의 입장이 되자 말을 싹 바꾸었다
후진국이 보조금 주는 것은 나쁜 짓이고 미국이 보조금 주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한 당연한 정책이라고 한다. 미국은 중국과 AI전쟁에서 반도체는 전략물자라고 보는 것이고 그래서 반도체 보조금은 국방비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미국과 중국이 AI를 두고 전쟁 중인데 AI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가 반도체다
지금 반도체를 장악하면 시장을 장악하고 세계를 지배한다. 세계의 지배자 미국이 이를 좌시할 리가 없다. 가치동맹, 민주동맹, 반도체동맹으로 반도체 강국들을 줄줄이 한 줄에 엮었고 이를 통해 중국을 봉쇄하고 이들이 미국에 공장을 세워 미국의 반도체 생산 내재화에 공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거부하면 가치동맹, 민주동맹이 아니라는 명분으로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를 회유하고 기업의 공장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걸었지만 거기에 수용하기 어려운 3가지 조건이 있다. 이미 땅 파고 건물 짓기 시작한 한국과 대만은 당황스럽지만 이미 너무 깊이 들어가 버렸다
완벽한 국제 분업체제가 만들어진 반도체 가치사슬에 역주행을 하면···
40년 전 미국에서 집 나간 반도체는 40여 년간 완벽한 국제 분업체제를 갖추었다. 반도체 가치사슬을 보면 전세계 어느 나라도 모든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다. 장비, 소재, 생산, 조립에 특화된 글로벌화된 국제 분업이 세계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키고 효율을 높이고 있다
경제에 정치와 이념을 넣으면 코스트는 무조건 올라간다. 첨단 산업 역사를 보면 시발점과 종착역이 같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미국은 반도체에서 종착역에 도착한 기차를 역주행시키려 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기술 수준에서 미국이나 대만, 한국의 경쟁 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미국의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한 반도체 생산의 미국 내재화(Made in USA)는 실제로는 한국과 대만이 가장 큰 리스크다. 여차하면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보조금에 코 꿰여 기술 강도를 당해 다 털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인구 중 5분의 1에다 경제력은 미국 대비 73%인 나라이고 연간 대졸자가 1100만명 쏟아지고 전 세계반도체 회사들이 모두 공장을 지은 나라다. 중국이 독하게 마음먹으면 시간이 문제지 반도체 국산화는 이룰 수 있다.
지난 5년간 미국이 제재한 중국 기술기업 600여 개 중에서 부도나거나 사라진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뒤에 오는 놈을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미봉책으로는 후발자의 추격을 근본적으로 따돌릴 수 없다. 미국의 어설픈 기술 규제, 장비 규제, 생산 규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내성과 전투력만 높인다.
미국은 중국이 감히 엄두를 못 내는 기술격차를 만들어야 미국이 살고 중국이 죽는다. 반도체가 아니라 초전도체(Superconductor), 컴퓨팅이 아니라 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으로, 5G가 아니라 6G·7G로 가야 한다.
미국의 어설픈 구멍 난 대중국 기술 봉쇄가 아이러니지만 중국 반도체 산업의 빠른 성장과 국산화율 제고를 가져오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한국과 대만 같은 반도체 생산국이 1차적으로 타격을 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미·중 반도체 전쟁에 단기적으로 한국과 대만은 이득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이 반도체 국산화를 달성하는 순간 최대 피해자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국의 단기적인 미세한 중국 공장 증설에 대한 유예 조항 첨삭 여부에 울고 웃을 상황이 아니다. 더 길게 보고 제대로 된 중장기 컨틴전시 플랜을 짜야 한다. 그리고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가 당선되면 바이든의 대중 정책은 또 홀랑 뒤집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젠 포스트 바이든 그리고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도 준비해야 할 때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1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