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갈아 심판받는 악순환의 정치
유창선 (시사평론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다. 사실은 기초단체장 한 사람을 선출하는 작은 선거에 불과했지만, 앞장서서 판을 키운 것은 여권세력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했던 김태우 후보를 확정 판결 3개월 만에 사면·복권시켜 출마의 길을 열어주었다. ‘윤심’이 김태우에게 있음을 감지한 국민의힘은 태연히 그를 후보로 공천했다. 대체 그런 비상식적인 광경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안중에 없는 모습이었다. 국민의힘은 김태우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도부가 총출동하면서 ‘총선 전초전’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판을 키워놓고는 정작 참패를 당했으니 한마디로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 ‘자해 정치’를 한 셈이다. ‘윤심’을 따르는 데만 급급하다가 ‘민심’을 잃은 결과다.
2021년 이래로 보수정당 쪽이 큰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처음이다. ‘박근혜 탄핵’을 거치면서 보수정치세력은 사실상 궤멸 상태에 처했었다. 급기야는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그 뒤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바꾼 보수정당은 와신상담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재기를 꿈꿔왔다. 마침내 2021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고 3연승의 개가를 올렸다. 보수정당이 수렁에서 빠져나와 부활한 듯했다. 그런데 이제 보수정당이 개표방송을 보면서 샴페인을 터뜨리던 시간이 끝난 것이다. 강서구청장 선거의 패배는 김태우 후보나 국민의힘의 패배이기 이전에 윤석열 대통령의 패배였다. 정권교체를 하도록 해주었던 민심이 어느 사이에 윤석열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고 이제 화가 나서 심판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5개월 만에 이제 ‘심판하는’ 위치에서 ‘심판받는’ 위치로 뒤바뀌게 된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도 예상하지 못했던 참패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허망한 것은 새로 선출한 정부를 불과 1년 5개월 만에 심판하러 나서게 된 유권자들이다. 지난해 3월에 정권교체를 하라고 선택했던 것은 이전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국정운영을 하라는 기대였을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새로운 보수정부가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로의 복귀였다. 윤석열 정부의 시계는 거꾸로 갔다. 새로운 것을 갈구했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심판의 결심을 하게 되었으니, 국민에게 이런 허탈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돌아보면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당선되었던 것이 특별히 자신이나 국민의힘이 잘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태도와 언행, 정책과 비전에서 딱히 높은 점수를 줄 무엇은 없었다. 그럼에도 민심이 정권교체를 선택했던 것은 당시 문재인 정부 집권세력에 대한 환멸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편가르기 진영정치, 지지층만 의식한 강성 정치, 내로남불의 정치, 오만과 독선, 이런 부정적 모습들이 쌓이고 쌓여 주권자들이 민주당 정부를 심판하고 새로운 정부를 들어서게 한 것이었다. 대선을 치를 당시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또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그런 편가르기 진영대결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그런데 이제 같은 이유로 윤석열 정부 집권세력이 심판받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어디 또 있을까. 많은 언론과 정치분석가들이 여당이 참패한 원인을 진단한다. 그런데 지금의 여권세력이 민주당 정부를 비판하던 내용과 놀랄 만큼 닮았다. 편가르기 진영정치, 지지층만 의식한 강성 정치, 내로남불의 정치, 오만과 독선. 지금의 여권세력이 민주당 정부를 비판하던 내용 그대로이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용산’과 국민의힘만 모르고 세상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다. 대선을 치를 때는 ‘국민통합’을 다짐하던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념본색’을 드러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며 국무위원들과 여당 국회의원들을 앉혀 놓고 느닷없이 이념전쟁에 나서서 싸우라고 독려한다. 야당세력은 졸지에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지목당하고, 극우적인 사고에 갇힌 인물들이 정권의 핵심 자리들을 장악한다. 새로운 인재들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과거 보수정부 시절의 부적격 인물들만 재탕·삼탕으로 기용하니 납득할 수 없는 민심이 등을 돌린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고 믿는 강성 지지자들이야 ‘이제야 나라가 정상으로 간다”며 환호하지만,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찍었던 많은 중도층은 낡은 이념정치에 고개를 가로젓고 떠나간다. 오른쪽 이념으로 치달을수록 환호하는 강성 지지자들만 갖고 총선에서 이길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윤 대통령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대선에서 보수-중도연합을 구축하여 중도확장성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윤 대통령은 정권의 그런 자산을 스스로 해체시키고 강성 보수의 지지만 받는 길을 가려했던 것이다. 21대 총선에서 보수정당이 참패한 이후 중도확장성을 갖는 정당으로 변신하려 했던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를 하루 아침에 원점으로 돌려놓는 선택이었다. 보수정당이 쌓았던 공든 탑이 무너진 것이다.
민심은 과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던 것과 닮은 이유로 지금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가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며 다시 민주당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렇다 해도 그 또한 민주당이 잘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게다. 민주당이 보궐선거에서 압승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성 팬덤정치에 의존하고 있으며 당내 민주주의가 사라진 ‘이재명 유일정당’으로 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이 그랬듯이, 민주당 또한 잘해서 보궐선거에서 이긴 것이 결코 아니다.
여야가 누가 누가 더 못하는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정치이다. 선거 때 여야 어느 한쪽의 승리가 결코 그들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현실은 우리 정치의 불행이다. 신뢰받아 지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반대 쪽이 너무 형편없어서 생겨나는 반사이익이라면 그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우월하고 잘해서 정권을 잡았다고 착각하는 데서 오만과 독선의 정치가 생겨난다. 그러니 5년이 아니라 1~2년을 주기로 번갈아 가면서 심판 당하는 악순환의 정치가 반복되는 것이다. 언제나 계속해서 믿고 지지할 정당을 국민들은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슬픈 질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