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필사적으로 돈을 세고, 나는 온갖 라면을 섭렵하고. 퇴근 후 가장 큰 걱정은 전기난로에 불이 안 들어오는 것. 3위안짜리 향을 피우고 3억 가지 소원을 비니, 나머지는 그냥 하늘에 맡기련다…(생략) 낮에는 종이 위에 사업을 끄적거리다가 밤에는 꿈속에서 연분을 맺으니. 절 아니면 복권가게에서 죽치고 있네." <리얼멍, '재신전에 오랫동안 꿇어앉아서'>
"노동자가 흘린 땀은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 더 많은 기적을 만들어 낼 청화자기처럼 소중하지...(생략) 세상의 중심에 서서 자랑스러운 가슴을 활짝 펴고 젊어서 나 홀로 먼 곳을 돌아다녀도 고향을 잊지 않네. 사서 오경을 음미하며 중국어로 노래를 불러본다."
“3위안짜리 향 피우고 3억개 소원 빌어” 청년 애환 담은 ‘탕핑가’
‘재신전에 오랫동안 꿇어앉아서(我在財神殿裏長跪不起)'라는 노래는 중국 숏클립(짧은동영상) 플랫폼 더우인(抖音, 틱톡 중국버전)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리얼멍(李二萌)이 지난달 말 발표한 후 청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7년생 주링허우(九零後, 1990년대 이후 출생세대)인 그는 현재 팔로워 수만 100만명이 넘는다. 경쾌한 멜로디와 어우러진 가사에 청년세대의 고된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았다는 점에서 청년들 사이에서는 ‘탕핑가(躺平歌)’로 불리고 있다.
탕핑은 의욕을 잃고 드러눕는다는 뜻이다. 집도 차도 사지 않고,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으며, 꿈도 야망도 없이 최저 생존 기준만 유지해 나가겠다는 소극적 반항을 말한다. 한국의 ‘5포 세대(취업·결혼·연애·출산·내집 마련 포기)’의 중국식 버전이라 하겠다.
"현재의 내 고통은 아마도 절이 제일 잘 알듯"이란 구절로 시작하는 노래는 가사마다 탕핑족으로 전락한 청년들의 애환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랑은 없어도 괜찮지만, 돈이 없으면 절대 안된다”, “출근과 승진 사이에서 ‘탕핑’을 택했다’”, “체제와 관계 사이에서 포시(佛系, 모든 일에서 해탈해 출세나 돈벌이 등 욕망을 억제하며 무덤덤한 자세로 삶을 사는 방식)를 택했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현재 중국 당국의 검열에 걸려 중국 인터넷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경기 불황 속 취업난과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중국 청년 세대들은 팍팍한 현실 속 불안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부처님에게 의지하려는 청년들로 절이 붐비고, 1등 당첨 요행을 바라며 '과과러(刮刮樂, 즉석복권 이름)'라는 복권 긁기가 유행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올해 6월 중국 청년실업률은 21.3%였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5%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최고치였다. 중국 정부는 그 이후로 월별 청년실업률 통계를 아예 발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실제 청년실업률 역시 정부 발표보다 더 높다는 관측도 있다. 장단단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교수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3월 기준 중국 청년의 실제 실업률은 46.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6~24세 청년 3300만명 이상이 올해 구직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이 중 600만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도 대졸자의 석·박사 진학을 지원하고, 공무원 시험을 장려하는가 하면, 청년층을 인력이 필요한 농촌 진흥·가사도우미 산업으로 이끌기 위한 일자리 창출 조치를 내놓곤 있지만 청년들의 불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년에 ‘혁명사상’ 주입해라” ‘홍색 래퍼’ 키우는 中공산당
청년들의 무기력증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경계심도 커졌다.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중국 경제 성장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도 청년들의 '탕핑' 현상에 쓴소리를 냈다. 이달 초 중국 공산당 이론잡지 '구시(求是)'는 시 주석의 2월 연설문을 게재해 "청년 인재의 혁신 창조를 장려해야 한다"며 "노동으로 부를 창출하고, 열심히 일해 업적을 쌓고, 열심히 노력해 행복을 창출하도록 사회 여론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노동 경시·벼락부자·소극성·탕핑 등 불량사상이 만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 산하 최대 청년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올해 국경절을 기념해 웨이보에 ‘화하(華夏)’라는 제목의 가요 뮤직비디오를 올린 배경이기도 하다.
공청단이 지난 1일 중국 웨이보 계정에 “오늘날 시대의 주인공으로 우리는 중국 대륙에 서서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 가리라!"라는 메시지와 함께 게재한 이 가요는 애국적 수사로 가득해 청년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뮤직비디오 중간에는 중국 혁명지도자 마오쩌둥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설 장면도 삽입됐다.
가수는 래퍼 GAI(본명 저우옌)로, 과거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힙합 가수로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데뷔 초기 반골 기질이 강했던 그가 마약과 폭력에 관한 랩을 선보여 TV 출연이 금지된 전력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는 현재 공청단이 선전에 활용하는 '홍색(혁명) 래퍼'로 180도 변신했다.
GAI 같은 젊은 래퍼를 ‘포섭’해 공산당에 협조하도록 하는 것은 공청단이 중국 청년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움직임의 하나다. 공청단은 청년들이 즐겨 찾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현재 공청단은 웨이신·웨이보·비리비리·더우인 등 중국 26개 온라인 SNS 플랫폼에 계정을 개설했다. 이들 계정 팔로워 수만 모두 합치면 8억명 이상이다. 이 중 위챗 계정 팔로워가 1억1000만명으로 가장 많다. SNS에서 공청단은 스스로에게 ‘퇀퇀(團團)’이라는 애칭을 붙여 친숙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등 청년과 교류에 애쓰고 있다.
사실 중국서 청년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교육·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공청단은 공산당 미래 지도자 양성소로 불린다. 특히 공산당 청년 사업의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2022년 말 기준 단원 수는 7358만명에 달한다. 주력군은 1990~2000년대 출생한 MZ세대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원래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리커창 전 총리 등을 배출한 공청단은 한때 중국 공산당 권력의 핵심 세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나, 시진핑 주석 집권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시 주석은 과거 덩샤오핑 전 지도자의 말을 인용해 “공청단은 천개 실수를 해도 상관없지만 단 한 가지 잘못, 당의 노선에서 이탈하는 실수는 범해선 안된다”며 오늘날 공청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몇 년간 공청단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한 시 주석은 최근 공청단에 새로운 임무를 수여했다. 중국 내 치솟는 집값, 실업률 증가, 과잉 경쟁으로 무기력증에 빠진 중국 청년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혁명 사상으로 무장시키는 것이다. 청년들이 시 주석이 제창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이른바 중국몽 실현에 적극 동참시키기 위함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5월 공청단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공청단은 중국 청년운동 선봉대, 당의 충실한 조수, 믿을 만한 예비군으로, 청년을 이끌어야 한다"며 공청단이 중국몽 실현의 '돌격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