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강제추행죄 유무죄 여부를 결정할 때 '저항이 곤란한 정도'에서 '공포심을 일으키는 정도'로 판단 기준을 변경했다.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이 완화하면서 가해자의 처벌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된 1심은 A씨의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고등군사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다며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만져 달라', '안아봐도 되냐'는 등의 말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위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으면 인정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 등 추행 혐의만 적용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 판단 기준을 변경하고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기존에는 강제추행죄가 성립되려면 피해자로 하여금 '항거(저항)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폭행 또는 협박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를 요구하지 않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라고 봐야 한다고 판단 기준을 변경했다.
이 사건에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적용하면 A씨의 행위는 B양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의 수단이 되는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를 폐기한다"며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해 상대방을 추행한 경우에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강제추행죄와 관련해 대법원이 1983년도부터 상대방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한 종래의 판례 법리를 40여년 만에 변경했다"며 "범죄 구성요건의 해석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사실상 변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현재의 재판 실무와 종래의 판례 법리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형평과 정의에 합당한 형사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법문언 그대로 해석하자는 취지이지 법해석만으로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자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