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리먼쇼크 15년후 …세계는 빚더미에 '디폴트' 경고등

2023-09-15 06:00
  • 글자크기 설정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오늘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른바 리먼 사태가 터진 지 꼭 15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와 비교한 지금의 국내외 경제환경은 어떤가. 내년도 긴축예산 기조 아래 경제를 운영할 윤석열 정부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이런 관점에서 리먼쇼크를 다시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2008년 봄 이후 미국 대형 증권사 베어스턴스와 주택공사의 위기가 터져 나왔다.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이 대처에 나서면서 시장도 안정되자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8월에 베이징 올림픽을 관람했다. 2008년 8월 18일 전 세계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보고서도 나왔다. "최악의 시기는 끝났다. 한여름의 휴식을 즐기자". 필자는 리먼 브러더스의 전략가다.
겉으로는 조용한 여름을 보낸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혼란을 일단 봉합하면 시장에 낙관론이 확산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문제가 드러나고, 패닉이 확산되고 상처는 깊어진다. 이것이 리먼 사태의 교훈이다.
 
지금 세계에서는 저금리를 배경으로 증가해 온 이자 부채가 세계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하며 여기저기에 위기의 신호등이 켜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 세계 약 7700개 기업의 이자 부채 잔액은 약 13조 달러(약 1경9000조원)로 금융위기 직후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이자 지급 부담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기업의 재무 운영은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경제신문이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비교 가능한 전 세계 7689개 기업(금융 제외)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2023년 4~6월 말 이자부채 잔액은 12조7581억 달러로 2008년 10~12월 말 6조6000억 달러보다 92% 증가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기우치 도모히데 이코노미스트는 "기업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경제의 약점이 가계가 아닌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차입금 금리 상승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7700개 기업의 2023년 4~6월 이자지급액은 약 1250억 달러(약 180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증가했다. 특히 최근에는 5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수익력과 재무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금리 상승의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채무불이행(디폴트)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무디스 조사에 따르면 올 4~6월 전 세계 디폴트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한 48건으로 3년 만에 가장 많았다.
무디스는 2024년 중반에 디폴트율이 10~15%까지 올라갈 수 있는 '비관적 시나리오'도 가정한다. 이렇게 되면 저금리 덕분에 적은 이익으로도 이자비용을 충당해 온 '숨은 좀비 기업'들의 재무 악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기업 부문의 금리 민감도가 개인보다 낮기 때문에 경기 둔화는 리먼 사태 때보다 완만하게 진행되는 만큼 오히려 기간은 길어지기 쉽다고 진단한다.
 
지난 8월 25일 중앙은행의 '다보스 회의'에 해당하는 국제 경제 심포지엄인 '잭슨홀 회의'(미국 와이오밍주)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인플레이션과 금리를 이야기하는 연준 총재가 아니라 부채 문제를 제기한 학자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금융위기 때부터 코로나19 사태 때까지 쌓인 막대한 공공부채는 "당분간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가 부채 수준을 낮출 만큼 강력하게 확장되지 않을 것이며, 많은 나라에서 정부는 지출을 줄이는 대신 적극적으로 지출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국이 재정난을 완화하기 위해 세수를 늘리거나 성장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도전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와 '대처주의'(대처 전 영국 총리의 경제사상)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이후 많은 선진국에서 지출 감축과 감세를 내세우는 '작은 정부'가 중심적인 정치 이념이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극복,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의 과제에 직면한 각국은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정권은 30년대 이후 최대 규모로 경제에 개입하면서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재정적 행동주의 부활'의 한 패턴으로 본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경기 순환을 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재정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차입비용이 급등하면서 이미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파이낸셜 타임스 최근 특집기사에 따르면 현역 세대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해 고령자(대부분 자산은 있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료비와 공공급여를 충당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세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지출 확대가 가장 필요한 분야로 국방, 인구문제, 기후변화의 세 가지를 꼽았다. 국방의 경우를 보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 종식은 '평화의 배당금'을 가져왔고, 국방 예산을 다른 용도로 돌릴 수 있게 됐다. 2021년 말 기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목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2%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국가는 31개 회원국 중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 국가들과 중국과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많은 정부가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
노령인구 부담도 커지고 있다. 20~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에서 2023년 33%에서 2027년 36%로 상승하고, 이후에도 매년 약 1%포인트씩 증가해 50년에는 5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인 탈탄소 트렌드로 경제의 탈탄소화 비용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재정정책이 새롭게 주목받는 것은 탈탄소 트렌드와 지정학적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와 최근 유럽 에너지 위기 속에서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대규모 백신 접종 계획의 실행과 가계와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이다.
사회적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큰 정부'의 부활은 지출 확대 압력을 가져온다. "재정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거시경제 정책이 더욱 정치화된다"는 말이 있다.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제한된 정책수단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재정정책은 "누구에게, 무엇에 세금을 부과할 것인지,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통과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억제법'이 대표적이다, 녹색 보조금 계획이라 할 수 있는 이 법은 녹색기술과 탈탄소를 위해 노력하는 제조업에 수천억 달러의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미국 대통령이 투자를 늘리기 위해 이토록 자유롭게, 이토록 신념을 가지고 재정확대 논의를 꺼낸 대통령은 루스벨트 이후 아무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지출 확대의 유혹과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경제 성장이 기대에 못 미치고, 중앙은행이 금융을 긴축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선진국 정부들은 고민에 빠졌다. 기업과 개인을 위한 막대한 코로나19 대책으로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는 공공부채가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자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부채 증가와 금리 상승은 금융시장에서 국채 발행을 어렵게 만들고, 발행 비용도 높아진다. 특히 단기 국채가 그렇다.
재정전문가들은 세입을 늘리는 데 가장 인기 있는 수단은 앞으로도 세금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OECD 통계를 보면 각국 정부가 사회안전망과 의료제도를 확충하면서 회원국 평균 조세부담률은 GDP 대비 1965년 24.9%에서 1988년 32.6%, 2021년 34.1%로 상승했다.
그러나 생활비 위기 속에서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세금 인상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행정 서비스를 줄이는 것이 또 다른 선택지라고 하지만 역시 정치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주디스 프리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자본세와 소득세의 균형, 토지세 증세의 찬반, 부유세 과세의 기반을 넓히는 방법, 기업 초과이윤 과세 등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정책은 매우 강력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세계 각국의 공통된 고민이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대목이 미국을 필두로 ‘큰 정부’들이 지향하는 국가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내건 신산업정책이다. 이 신산업정책은 테크노 헤게모니(기술패권) 경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요국들은 정부의 보조금 제공을 무기로 하는 산업정책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각국의 미래 혁신전략의 요체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민생중심’과 ‘긴축예산’이란 기치로 총 657조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내놨다. 이 가운데 연구개발 예산은 ‘교육정책-과학기술정책-산업정책-국가경쟁력-국력’으로 연결되는 국가미래전략의 머릿돌 역할을 한다. 역대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마치 성역(聖域)처럼 여겨 꾸준히 늘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기조를 중단하고, 2024년도 R&D 예산을 25조9000억원으로 무려 16.6%(5조2000억원) 줄였다. 내년도 예산에서 연구개발의 성역은 깨졌다. 정부가 강조한 긴축예산의 본보기가 된 셈이다. 이제 과학기술계는 국가 연구개발의 효율성과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새로운 혁신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계는 그동안 연구개발비를 효율적으로 집행해 왔는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는지 점검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한다면 재정 긴축의 기조 하에서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의 적정 수준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R&D 예산 규모는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그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