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유래를 통해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역사적 환경이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란 없다. 특히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이 사는 사바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 경제에도 엄격한 논리적 규명이나 학문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도그마들이 떠돈다. 예컨대 확대재정이 옳은 지 건전재정이 더 바람직한 지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대표적이다.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룰 수 있게 국가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더 나아가 나라 살림이 빠듯하다고 무조건 빚을 내는 건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건전재정 슬로건이 국시(國是)화하는 것이다. 가계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조성하거나 자녀의 학업을 독려하기 위해 빚을 내는 건 나름의 합리적 선택이다. 더더욱이나 집안에 먹을 게 부족한 상황이라면 쌀을 사러 돈 빌리는 걸 타박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정은 어떤가.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4%까지 내려 잡았다. 1분기 성장률은 0.3%, 2분기는 0.6%였다. 수출이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내수 소비까지 위축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1.4%'가 다소 낭만적인 숫자로 보일 정도다.
올 들어 7월 말 누적 기준 국세수입은 지난해 동기보다 43조4000억원 줄었다. 연간으로 세수 펑크 규모가 60조원 이상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 침체는 기업과 가계의 생산·소비 활동에 악영향을 미쳐 국세수입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앞뒤 좌우 사정을 모두 살펴도 지금은 긴축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오히려 재정 지출을 늘려 단기적 불황을 해소하고 국민적 고통을 경감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확장재정을 통한 위기 극복을 제언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기능적 재정' 개념을 굳이 끌어다 붙일 필요도 없다.
정부는 내년 657조원의 예산을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2.8% 늘어난 금액인데 2005년 이후 최소 증가 폭이라고 자화자찬한다. 문재인 정부 초반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놓고 논쟁을 펼쳤다. 기재부는 대외 신인도 하락과 미래 세대 부담 등을 이유로 국가채무 비율을 40%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가 긴축 예산이라고 자평하는 내년의 경우 국가채무 비율이 51%다. 기재부 분석에 따르면 2027년까지 53% 수준으로 계속 우상향한다.
작금의 경제 위기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늘어난 나랏빚에 짓눌린 탓인가. 그렇다면 같은 기간 우리보다 더 많은 재정 지출을 감행한 미국과 일본 경제가 잘 나가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를 힘겹게 하는 고금리·고물가와 반도체·대중 수출 부진 등은 국가채무와 관계 없는 대내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당면한 악재를 해소하면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해법일 텐데 정부는 내년 예산을 짜며 교육과 연구개발(R&D) 예산을 각각 6.9%와 16.6% 삭감했다. 0.70명이라는 초유의 출산율, 파국이 예고돼 있는 연금 구조, 미·중·일과의 극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 등 국가적 현안을 고려할 때 예산 지출의 방향성이 올바른 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도 올해 '상저하고'를 넘어 내년에는 경제 사정이 눈에 띄게 나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거두지 않는 정부를 지켜보면 중국 송나라의 한 농부가 떠오른다. 밭을 갈던 중 토끼 한 마리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걸 보고 농사는 뒷전으로 미루고 그루터기만 지켜보다 세간의 웃음거리가 된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주인공 말이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만 믿고 있기에는 글로벌 경제가 움직이는 꼴이 심상치 않다.
핵심은 정부 재정이 적자인지 흑자인지가 아니다. 정부의 재정 지출이 불황 극복과 경제 활력 제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더 중요하며, 그게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방편이라는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경제는 도그마로 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