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한·미·일 협력의 새 시대 …일본은 역사 문제에 진지함을 보여라

2023-09-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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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조진구 교수]


 
지난달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은 한·미·일 협력을 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표명된 ‘역사적’ 회담이었다. “향후 한·미·일 협력에 지속력 있는 지침”이 될 ‘캠프 데이비드 원칙’에서는 “힘에 의한 또한 강압에 의한 그 어떠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천명했지만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안보와 경제,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담은 공동성명(‘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는 남중국해에서 불법적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의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직접 언급하면서 “인도·태평양 수역에서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새 시대를 향한 3국 간 협력’ 의지와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는데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미·일 협력에 대한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강조했다.

첫째,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연계를 강화해 한·미·일 3국 간 안보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2022년 12월 개정한 국가안전보장전략에서 일본의 안전 보장에 ‘종전보다 한층 중대하고 긴박한 위협’이라고 규정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연말까지 실행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위한 중요한 자금원인 사이버 활동을 감시하는 한·미·일 워킹그룹을 신설하기로 한 것을 성과로 언급했다.

둘째, 한·미·일 협력 분야 확대다. 특히 북한에 대한 대응이란 측면에서 지역 내 억지력과 대처력 강화, 그리고 제재의 완전한 이행을 위한 협력 강화를 넘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해 협력할 뿐만 아니라 중요 전략물자 공급망 분야 등으로까지 3국 간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셋째, 한·미·일 3국 정상만이 아니라 복수의 각료 차원에서 3자 회담을 적어도 연간 1회 이상 개최하여 한·미·일 협력을 안정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정상회담과 다양한 각료급 회담의 정례화는 일본 측 제안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약속을 뒤집을지도 모른다는 일본 측 ‘우려’를 반영한 것일지 모른다.

기시다 총리는 한·미·일 3국 간 협력에 기초가 되는 것이 공고한 양자 관계라고 강조했지만 한·미와 미·일에 비해 한·일 간 협력 축은 취약하다. 지난 3월과 5월 한·일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을 계기로 관계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했으나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인식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일본 측은 여전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양국이 직면한 안보 환경을 고려하면 한·일 관계는 양자 관계의 틀을 초월한 인식과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지만 안정적인 한·일 관계는 한·미·일 협력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을 중시해왔다. 지난 3월 3·1절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손을 잡는 ‘협력의 파트너’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국내의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높이 평가한 기시다 총리는 5월 초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 주신 것'에 감명을 받았다면서 식민지 지배하의 엄혹한 환경에서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한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개인적인 소회를 밝혔다.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초청한 기시다 총리는 5월 21일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했다.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인 일본과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파격적인 대일 인식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이 역사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민감해 하는지 일본 측 자각심이 부족한 현실에서 한·일 양국이 역사문제에서 완전하게 인식을 공유하고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일 관계에 많은 곡절은 있었으나 양국 지도자들은 관계 발전을 위한 지혜를 발휘해 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98년 10월 8일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공식 외교 문서로는 처음으로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한국 측은 이러한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 우호 협력에 입각하여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화답했다.

2010년 8월 10일 한일강제병합조약 체결 100년에 즈음하여 발표한 담화에서 간 나오토 총리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한국인들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로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다.

과거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20년 6월 19일 영국 중앙은행은 노예무역에 관여했던 역대 은행 총재 행위에 대해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그들의 초상화를 철거하고 철저한 조사 의사도 밝혔다. 또한 2021년 10월 1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0년 전 파리 교외에서 벌어진 옛 식민지 출신 주민이 경찰에게 학살당한 사건을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고 비난하고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추도식에도 참석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직시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정례브리핑에서 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 직후 자행된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 일본 측에 진상 조사 필요성을 제기하고 진상 규명을 위한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일본 정부 조사 결과 “(조선인 학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이다. 이에 대해  9월 1일 마쓰노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임수석 대변인 발언은 알고 있으나 코멘트하는 것은 피하겠다면서 본인 발언은 국회 답변 등을 통해 밝힌 기존 일본 정부 입장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2017년 11월 10일 하쓰시카 아키히로(初鹿明博) 중의원 의원이 보낸 질문에 대해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학살되었다는 사실’과 희생자 수 등을 조사했지만 “정부 내에 그러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던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2009년 3월 내각부 산하 중앙방재회의는 정확한 한국인 희생자 수는 알 수 없지만 “전체 사망자 수 중 1~수 %”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마쓰노 장관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조사 보고서는 전문가가 집필한 것으로 “정부 견해를 밝힌 것이 아니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9월 1일자 사설에서 마이니치신문은 “주민들이 조직한 자경단만이 아니라 군과 경찰도 살해에 가담했다. 정부는 당초 폭동을 사실이라고 각지에 전하고 단속 강화를 지시했다”고 지적했는데 31일 기자회견에서 마쓰노 장관은 내무성 경보국장이 각 지방 장관에게 보낸 단속 강화 지시 전문 등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간 공식 문서가 없다던 일본 정부는 1992년 7월과 1993년 8월 두 차례 정부 조사 결과에서 강제성을 인정했다. 또 아베 정권 시절인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토 대지진 당시 전체 희생자가 10만명을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 희생자는 적어도 1000명에서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말하는 역사의 전환기에 한·미·일 3국이 법의 지배에 기초한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해 가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되지만 일본이 역사문제에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9월 2일자 마이니치신문 사설이 지적하듯이 조선인 학살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는 많이 있으며 학살 사실을 묵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일본 정부가 성실하게 재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한국 측에 전달할 것을 기대한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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