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새만금 잼버리 파행의 뼈아픈 '수업료'

2023-08-11 06:00
  • 글자크기 설정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공동 조직위원장인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견지명이 있는 듯하다. 대회 전 페이스북에서 그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모든 대원이 생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고 갔으면” 하는 바람을 적었다. 그가 바라던 대로 이번 달 초 새만금에 모였던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 4만2000명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갖게 되었다. ‘Draw Your Dream’이라는 이번 대회 구호대로 꿈을 그리게 되어서가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한 대회 차질로 중도에서 포기하고 철수하는 유례없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큰 기대와 희망을 갖고 새만금을 찾았던 이들 청소년은 부적절한 장소 선정, 조직위의 준비 부족 등 내적인 요인에다 기록적인 폭염과 태풍 등 외적인 요인이 겹쳐서 생겨난 대형 사고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이번 대회 실패에 대해 조직위나 관계 기관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가혹할 수 있다. 섭씨 40도에 달하는 기록적인 고온으로 인해 온열 환자가 발생한 것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다. 강력한 태풍이 닥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회 중단 후 전국 각지로 흩어져 지자체와 기업의 도움으로 관광·문화 체험을 하고 서울에서 K-팝 공연까지 즐기게 되었기 때문에 이들 대원이 대회의 악몽은 잊을지도 모른다. 또 각계각층에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좋은 추억을 제공하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귀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까지 많은 대규모 국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보여준 한국의 저력은 이번 대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 2018년 평창 올림픽 등 수많은 국제 행사를 치르며 한국은 언제나 철저한 준비, 능숙한 운영, 그리고 정부와 국민의 헌신적 노력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모든 행사에서 나름대로 장애물이 있었지만 대개 큰 무리 없이 극복해 냈다. 그러나 이번 행사의 실패로 이런 인식은 일거에 날아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는 금년 말 있을 2030년 세계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부산이 패배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연히도 2027 세계 가톨릭 청년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낭보가 며칠 전 나왔지만 마냥 즐거워할 때는 아니다.

앞으로 대형 국제 행사를  한국이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이번 새만금 잼버리의 문제점을 깊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많이 지적되는 컨트롤타워 부재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대회는 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세 명을 포함해서 다섯 명의 공동 조직 위원장이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은 앞에 언급한 김윤덕 의원과 강태선 한국스카우트 연맹 총재다. 여기에 김관영 전북지사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다양한 부처와 기관이 개입되었지만 핵심적인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태에서 결국은 누구도 전권을 갖고 책임지는 구조가 되지 못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권과 야권, 혹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 부재다. 여당 소속 중앙정부 장관들과 야당 출신 지방정부의 수장, 그리고 정치인 간 원만한 협력과 협조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대립과 반목이 일상인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쉬울 수 없는 문제다. 이 점은 벌써 이번 대회 실패 책임에 대한 양 진영 간 설전에서 잘 드러난다. 여권은 대회를 주최한 지방자치단체와 이 대회를 유치한 지난 정부에 화살을 돌리는 반면 야권은 중앙정부의 실정을 지적하고 있다.

대회 장소 선정에 있어서 이러한 난맥상은 잘 나타난다. 애초에 간척지인 새만금에는 그늘이 없어 폭염에 취약하고 배수가 어려워 습지가 생겨서 해충이 극성을 부릴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과거 정부가 입지 조건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새만금을 대회 장소로 선정했다고 지적한다. 1991년 세계 잼버리 대회가 강원도 고성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은 그늘이나 배수 등 자연 여건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가 어느 정도 타당한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태에서 각 담당 기관의 방만하고 무책임한 예산 집행이다. 보도에 따르면 무려 1000억원 넘는 대회 예산 중 대부분이 잼버리 운영이 아니라 조직위 운영비 등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전라북도, 부안군, 여성가족부 등 담당 기관 공무원이나 지자체 의원들이 잼버리 준비를 핑계로 외유성 해외 여행을 다녀온 점이 지적된다. 잼버리가 열리지도 않았던 장소를 방문해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고 영국에서 손흥민 선수의 축구 경기까지 관람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방만한 예산 운영은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역시 대회 준비가 각 부처와 기관으로 흩어져 있어 감시가 소홀했기 때문이다.

스카우트는 1907년 영국 로버트 베이든 파월 경이 다양한 계층의 청소년 20여 명으로 시작하여 현재 전 세계 4500만명이 참여하는 지구촌 최대 청소년 운동이다. 이들이 4년에 한 번 모여 치르는 잼버리는 지구촌 청소년들의 우정과 이해를 위한 축제 한마당이다. 자연 속에서 서로를 배우고 화합하며 내일을 꿈꾸는 기회다. 새만금 잼버리에 참여한 청소년 4만여 명도 많은 꿈과 기억을 안고 귀국할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이 한국에 대한 어둡고 불쾌한 것이 아니기를 기대해 본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