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소프트파워'를 '하드파워'로 연결 하려면

2023-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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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1990년대 초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학 교수가 소프트파워 개념을 정리해 발표한 이후 이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냉전이 끝나고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하드파워가 확고한 시점에 문화, 가치, 정책 등 소프트파워에 치중해야 한다는 얘기였지만 곧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내전,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일어나는 마당에 유약한 소프트파워를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였다. 사실 이 개념의 창시자인 나이 교수마저 나중에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합해진 스마트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표되는 소위 신냉전 시대에 소프트파워에 대한 이러한 의구심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군사력, 경제력 등 하드파워에 다시 치중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군사비를 늘리고 나토 군사 동맹을 확장하는 등 하드파워 확보를 위한 노력에 매진하고 있다. 기타 지역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확대되어 신냉전 시대의 첨예한 군비 경쟁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런 와중에 필자는 지난달 소프트파워와 공공외교를 주제로 한 세미나 참석을 위해 동유럽의 세르비아를 찾았다. 1990년대 말 코소보와의 갈등으로 내전을 치르며 인종청소의 주역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국가다. 나토의 폭격으로 수도 베오그라드는 심하게 파괴되어 아직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이웃 국가로 새로 독립한 코소보와의 갈등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세미나가 열린 지난주에도 코소보 내 세르비아 민족들이 사는 지역에 알바니아계 시장이 당선되자 이에 대한 시위가 벌어져 폭력 사태까지 야기되었다. 역시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끊임없는 하드파워적 갈등이다.
이런 마당에 필자가 연설할 주제가 자유주의와 이상주의에 근거한 소트프파워라는 점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세르비아 정부 관리, 외교관, 학계, 언론계 인사들에게는 생소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트프파워와 이를 위한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한국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최근 우크라이나 상황을 예를 들어 소트파워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했다. 지난해 초 러시아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우크라이나의 패배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역시 막강한 하드파워의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개월이 지난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침공을 막아내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혹자는 러시아의 패배를 예상하기도 한다. 예상과 다른 이런 상황은 왜 벌어졌을까? 필자는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소프트파워라고 여긴다. 전 세계 여론을 향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감성적이고 격정적인 메시지 전달, 그리고 그 나라 국민들이 보여준 결연한 항쟁 의지 등이 그것이다. 러시아를 압도하는 정당성 및 윤리적 당위성, 이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스토리는 세계 여론을 우크라이나에 호의적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결국 많은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군사 및 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만들었다. 한국마저도 러시아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것은 어떻게 소프트파워가 단지 소프트하고 유약하게 머물지 않고 강력한 하드파워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필자는 세르비아 청중들에게 이점을 설명했고 상당수 참석자들이 공감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파괴적이고 비극적인 내전을 겪었고 아직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세르비아가 어떻게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확보할 수 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특히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위해 유럽연합(EU) 가입을 뜨겁게 열망하고 있는 그들은 유럽, 널리는 세계 여론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파워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질문에 필자가 명쾌한 대답을 주지는 못했다. 세르비아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나름대로 제언을 했다. 테니스를 사랑하는 아마추어 테니스 동호인으로서 필자는 세르비아가 나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노박 조코비치 선수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세계적인 운동 선수나 스타는 출신 국가의 명성을 높여주는 소위 이전효과(transfer effect)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필자 역시 세르비아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이 한 선수를 계기로 이 나라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서 당연하게 드는 질문은 손흥민 선수나 BTS가 과연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 필요한 하드파워에 도움을 줄까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당장은 그 효과가 없는 듯해도 결국 소프트파워는 한 나라의 하드파워로 변환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은 경제력에 도움을 주고 추후에는 군사력에도 도움을 준다. 이 점은 벌써 한국의 경우 현실이 되고 있다. K-팝 등 한국의 매력적인 대중문화는 한국 상품 수출을 돕고 있고 한국 기업을 살찌우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늘어나고 이는 관광객과 유학생의 증가로 이어진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그렇다. 미국 등 우방 국가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할수록 군사적인 지원도 커질 수 있다. 미국의 지속적인 주한미군 주둔이나 안보 약속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소트프파워가 하드파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프트파워를 더욱 갈고닦고 잘 포장해서 세계에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한국은 아직도 이 점에서는 개선할 점이 많다고 본다. 좋은 소트프파워 자산이 많음에도 이에 대한 효과적인 운용이 부족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 제품, 인물이 있지만 이들을 한국의 명성이나 국익을 위해 잘 사용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소트프파워는 결국 소트프하고 유약한 영역에 머물고 말 뿐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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