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괴담과 음모론 전성시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부터 미국 사드 미사일 기지가 있는 성주 참외에 대한 괴담이 있다. 또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 부정이나 천안함 피폭 사건에 대한 음모론이 여전히 돌고 있다. 한편에서는 거짓말하는 정부가 이런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며 삭발 단식하고 다른 편에서는 이를 부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형국이다. 국무총리는 후쿠시마 오염수(정부 입장에서는 처리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횟집에서 회를 시식하는가 하면 여당 대표는 성주 참외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참외 먹방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제스처가 괴담과 음모론을 잠 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괴담과 음모론의 출처는 꼭 정부에 대항하는 야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 총선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권 일각에서 꾸준히 부정 선거를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 출처는 야당이거나 야권 매체다. 그 원조는 아마도 이명박 정부 시절 민심을 흉흉하게 했던 광우병 괴담일 것이다. MBC와 그 당시 야 성향 매체들은 미국 소고기가 인체에 치명적 해를 미친다고 주장했고 야당과 야권 인사들은 이를 맹목적으로 수용해 전국적인 반정부 투쟁을 이끌었다. 최근에도 야권 매체를 시발점으로 생성된 괴담이 야당과 야권을 통해 국민 전체로 확산되는 사례를 자주 본다.
미국 사회의 또 다른 음모론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것이다. 팽창하는 인구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음모론에서부터 백신이 인체에 큰 해를 미친다는 괴담까지 다양하다. 그 결과 많은 미국인들이 백신 맞기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큰 희생을 치렀다. 그 이전에도 백신에 관한 괴담은 꾸준히 나돌아 아이들이 홍역 백신을 맞으면 자폐증에 걸린다는 낭설 때문에 백신 거부 운동이 확산되어 의료당국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서방 사회의 더 뿌리 깊은 괴담들은 황당무계하기까지 하다. 대표적인 것들은 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 살아 있고 케네디 대통령은 CIA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교통사고가 아니라 왕실에 의해 살해되었다 등이다. 더 심한 것도 있다. 수백만 명이 희생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사건은 사실이 아니며 9·11 테러 역시 중동의 석유를 위해 미국 정부가 꾸민 일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인류의 달 착륙은 순전히 허구이고 미국 정부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실험하고 있다는 괴담이 있다.
이렇게 괴담과 음모론이 창궐하는 데는 역시 전통 매체의 책임이 크지만 이제는 여기에 더해 소셜미디어가 더 큰 역할을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는 근거 없는 정보들은 진실 확인이 불가하고 일반인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정보만 접하려는 소위 확증 편향 때문에 더욱 이런 정보에 탐닉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의 가짜뉴스나 악의적인 정보는 그렇지 않은 뉴스나 정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여기에는 의도하지 않은 가짜 정보(misinformation), 그리고 의도된 가짜 정보(disinformation)가 포함된다.
극단주의와 과격주의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신티아 밀러 이드리스(Cynthia Miller-Idriss) 미국 아메리칸대학 사회학 교수에 따르면 괴담이나 음모론은 사람들이 자신의 통제력을 상실할 때 많이 발생한다. 자신이 주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면 불안과 초조감을 느끼고 이때 흑백 논리에 기인한 명확한 해답을 제공하는 음모론에 기대게 된다. 특히 믿기 어려운 사건이나 불가사의한 사고 같은 상황을 접할 때 이런 현상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괴담과 음모론에 대한 대처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도 아직 초보 단계지만 몇 가지 단서는 제공한다. 아일랜드 University of College Cork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음모론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처방법은 당연히 예방이다. 즉, 특정 음모론에 대해 사전에 경고하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일단 음모론이 퍼진 후에는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조악한 증거를 식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가장 회피할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음모론에 대한 조롱도 금기시된다.
음모론이나 괴담이 어디서나 문제가 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심각하다. 지나치게 정파와 이념에 몰입된 언론 매체가 주된 이유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사회 전체가 지역·세대·남녀 갈등으로 갈라져 있어 더욱 그러하다. 전통 매체가 신뢰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소셜미디어의 파괴력은 커질 수밖에 없고 여기서 가짜뉴스는 더욱 활개를 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국무총리가 회를 시식하고 여당 대표가 참외 먹방을 해야 하는 일이 좀 더 잦아질 것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